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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교실이데아] 학교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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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4-30 12:38 조회3,9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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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는 교육기관인 동시에 행정기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수업은 교사가 책임을 맡고 진행하는 고유의 영역이라면 학교 행정은 담당 부서장을 중심으로 일을 진행한다. 부장 일도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부장과 학년을 담당하는 부장으로 나눌 수 있다. 신입 때는 부장의 역할을 제대로 몰랐다. 주어진 업무를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올해 학년부장 업무를 맡는다. 지난 교직 생활을 돌아봤다. 큰 것을 놓치고 살았다. 미숙한 후배를 이끌어 준 부장들이 남긴 울림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모르고 살았다.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는지 같은 부서, 학년에서 만난 부장들과 인연은 원만했다. 신입 시절 업무가 서투르다고 질책받은 기억은 없다. 결재 갔다가 지적받고 서류 작성해 다시 올리면 웃으며 도장을 찍어주었다. 부장은 학교 관리자와 교사 사이를 오가면서 업무를 보는 일만 해도 만만찮은데 내색하지 않았다. 부장의 업무를 덤으로 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신입 교사로 학교에 첫발을 디딘 날이었다. 낯선 공간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 긴장했다. 교무실에서 쟁쟁한 선배 교사들 앞에 나갔을 때 무슨 말을 하긴 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자리로 돌아온 순간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반갑습니다. 환경부장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장? 학교에 무슨 부장이?’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환경부장이 손을 내밀었고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학교의 부장을 만난 순간이었다. 부장은 언제 수업이 비는가를 물었다. 오후에 수업이 빈다고 하니 부장은 자신의 시간표를 보고 “6교시가 같이 비었네하고 말했다. 신입교사 처지에서는 부장이 무슨 일로 보자는 건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6교시가 되자 부장이 눈짓을 보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장은 말없이 앞장서 걸었다. 뒤따랐다. 행정실로 안내하더니 실장과 과장, 업무 담당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인사가 끝나자 부장은 교내 특별실, 음악실, 과학실, 미술실, 급식소를 돌며 건물의 특징을 안내해 주었다. 부장은 고등학교 구성원

과 건물 안내를 끝내고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중학교로 건너가자고 했다. 중학교 교무실에 가서 다른 교사들에게 신입으로 온 교사라고 소개했다. 중학교 교감이 학교생활 적응 잘하라고 하면서 박카스를 건넬 때 고등학교 수업 마치는 음악 소리가 울렸다. “김 선생, 수업 가이시더.”하고 부장은 경상도 억양이 묻은 말씨로 말했다.

 

고등학교로 돌아오는 보도에서 부장의 어깨를 보았다. 신입 교사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길 바라는 배려심 가득한 어깨였다. 그 부장은 퇴직한 지 만 4년이 지났다. 사회에 적응하고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봉사활동으로 지친 몸을 회복한다고 전했다.

 

학년부장을 한 선배가 기억난다. 그 선배는 체육을 담당했다. 학생들과 스포츠 활동을 해볼 것을 권했다. “일본에는요오, 음악 선생님이 축구클럽을 운영하고요, 영어 선생님이 관악 합주부를 지도한다고요. 학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학창시절에 배우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선생님이 할일이라니까요.”하고 서울 말씨로 말했다. 체육 전공도 아닌데 배구를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물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부장의 격려에 용기를 얻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하고 부딪쳤다. 클럽을 운영하다 벽을 만나면 조언을 구했다. 어느 때는 사다리 같은 조언으로 벽을 넘었고, 해머 같은 추진력으로 벽을 부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부장의 조언은 지름길처럼 다가왔다. 부장의 조언과 시행착오 끝에 배구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수업과 규정 업무만 하고 지냈다면 또 다른 보람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배구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길로 이끌어 주신 부장은 올해 중학교로 갔다. 정년이 5년 정도 남았을 것이다. 낯선 환경으로 떠나시는 부장의 어깨를 보았다. 이전보다 처졌다. 세월은 비켜갈 수 없었다. 단단한 어깨를 내주며 밟고 올라가 뛰놀아 봐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삼십 대 중반 몸과 마음이 아팠다.

겨울방학을 앞두고는 수업과 부서 일이 벅찼다. 몸이 더 아프지 않을까, 다른 부서원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겨울 방학에 접어들고는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회복하겠다는 의지는 강했지만,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앉아 있을 수만 없었다. 겨울방학 보충수업이 끝나면 영축산으로 향하리라 다짐했다. 배낭을 메고 겨울 영축산 품으로 빨려들었다. 체력이 고갈된 몸을 영축산은 받아주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등산로 초입에서 돌아서길 반복했다. 각오하고 다시 찾아간 영축산 등산로 초입에서 돌아섰다. 고개 숙인 교사가 되고 말았다.

 

고개를 다시 들게 해 준 사람이 나타났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부장이었다. 부장은 어쩌까이, 학교일 허벌나게 시켜부러서 미안혀서 어쩌까이.”하면서 영축산을 같이 오르자고 했다. 부장은 남을 가혹하게 부릴 분이 아니었는데 마음이 고와 본인 탓으로 돌렸다. 홀로 산을 오를 땐 다리가 후들거렸다. 부장이 앞서고 뒤따르니 걸을 만했다.

부장 뒤를 따라 겨울방학 동안 영축산 700고지에 있는 산장까지 오르내렸다. 부장은 산장에 가면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고로쇠 수액을 주문했다. “한잔하자고!” 보이지 않는 배려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부장의 응원 덕분에 몸에 생기가 찾아 들었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 부장은 큰형이 뒷바라지를 해주어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형제가 많았더란다. 농사짓던 큰형이 어금니를 깨물고 동생들에게 순천고등학교 합격허면 밀어줄 꺼신께 안 그면 궁물도 없어야.” 하면서 눈물을 훔쳤단 말을 했다. 큰형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산다고 말할 땐 콧등이 찡했다. 그의 큰형을 만난 적이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농삿일을 감당해냈다는 자존감이 엿보였다. 그 큰형이 선생은 말이여. 학부모헌티 촌지 5만원 받으면 5만원 짜리 인생밖에 안 되는 거시여. 단단히 혀.” 하고 부장님하고 나한테 말했다.

또 그는 교육행정 업무는 물론 컴퓨터 프로그램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다. 학교 행정업무를 장악하고 추진하는 힘이 탁월했다. 마치 행정 업무를 취미처럼 여겼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즐기는 차원이었다. 본인이 행정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만들면 동료들이 편안해진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면 동료들에게 더 도움을 줄 것이라며 승진하고 싶어 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 문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올 2월 명예퇴직했다. 퇴임식은 없었다. 친목회에서 마련한 식사자리에서 30년 동안 학교일 하면서 청춘을 소진했다고. 모든 걸 내려놓고 한 1년 푹 쉴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학교일에 매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학교의 부장들을 돌아보니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훌륭한 선배들의 어깨에 기대 더 멀리 더 높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그리고 너무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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