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교실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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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4-03 14:24 조회3,809회 댓글0건본문
“자네, 해마다 3월이면 새 학생들을 만난다고 신나했지? 학생들의 다양한 욕망을 읽고 진학이면 진학, 교과 지식이면 지식, 교우 관계 등등 도움 준다고 좋아했고. 마음 알아준 졸업생 만나 지난 세월 이야기하며 정을 나눈다고 할 땐 교사인 자네가 살짝 부러웠어. 자네, 올 3월은 어때?”
“올해 담임을 맡을 아이들 만나러 교실에 갔어. 이름을 불렀어. 30초 정도 얼굴을 보면서 눈인사도 하고 말이야. 서너 명 눈인사 마치고 다음 학생 이름 부르는데 대답이 없는 거야. 그 학생 자리에 없냐고 물었더니 다른 학생들이 손짓으로 그 학생을 가리키는 거야. 마스크 하고 창 모자 쓰고 그 위에 후드 모자까지 덮어 쓴 거야. 얼굴이 보여야지. ‘야, 첫 만남인데 모자 벗고 얼굴 한 번 보자.’하고 말했지. 버티는 거야. 그런 걸 두고 담임 간보기 한다고 그러대. ‘모자벗으면 안 될까?’ 부탁했지. 끝내 버티더라고. 화는 나는데 꾹 눌렀어, 휴우!”
“자네, 작년에도 반 학생들이 결석해 댄다고 고민했잖아. 출석부인지 결석부인지 모를 정도로 결석이 잦다고 그랬지?”
“자네 앞에서 못난 짓 했던가? 쑥스럽네 그려. 결석부로 변한 출석부 정리한다고 숫자하고 씨름했어. 전화해도 안 받다가 떡 하니 교실에 나타나 진료확인서, 의사소견서, 처방전 책상에 던져두고 사라진 학생들이 많았지. 무단결석, 무단지각, 무단조퇴하면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고 취업에 악영향을 끼치니 그런다고 하면서 말이야. 결석계 내밀면 가져오기나 하나. 작년에 무릎 관절도 아팠잖아. 절룩거리며 결석계 손에 들고 그 학생들 찾으러 다녔지. 어디서 찾은 줄 알아?”
“알지, 자네가 말했잖아. 아파서 병원 다녔다는 학생이 운동장에서 야생마처럼 공 몰고 질주하는 모습을 봤다고.”
“그랬나?”
“자네, 시치미 떼는 거야? 그뿐이었어? 작년 가을인가? 만난 자리에서 매일 조퇴시켜 달라고 오는 학생이 조퇴시켜 주지 않는다고 씨 팔, 하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뒤 학부모 민원 올까 봐 자네 바짝 긴장했잖아. 자네가 하도 긴장해서 나랑 그 학생 찾으러 피시방 간 적 있었잖아. 자네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해! 그 학생이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고 피아니스트처럼 컴퓨터 자판 위로 손가락 날리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 하더만. 그때 그 학생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나오는 자네한테 실망했지. 자네는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어깨를 늘어뜨리고 계단 내려오면서 ‘교육환경이 달라졌는데 어쩌라고? 아동복지법도 시행된다고 하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으로 학생 인권이 강화되는 추세인데….’ 하고 중얼거렸지. 그 정도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말이 이어졌어. ‘정책을 시행하지만 학생이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 대안은 없는데, 젠장,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는데. 쯧쯧, 혀를 차데. 그날 자네하고 술깨나 마셨지. 말싸움도 하고 말이야.”
“그날 말싸움을 했다고? 내가 뭐라고 그랬는데?”
“내가 교육 이야기 꺼내니까 말이야. 자네가 ‘기성세대는 술자리에 앉으면 교육문제를 안주처럼 꺼낸다고. 교사가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이야기하면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은 문제라고 하면서 대안 없는 결론만 내린다. 기성세대는 자기가 학창시절 경험한 단면만 보고 전체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교사가 교육현장에 서 일어나는 다양한 면을 말하면 기성세대는 기껏 자기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생각의 폭을 넓히지 않으려 든다.’하고 불같이 화를 냈지.” “자네에게 고백하건대 교사인 나도 고정관념을 벗어나자고 다짐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그래?”
“3년 전인가. 개학 첫날부터 일주일 내내 학교에 나오지 않은 학생이 있었어. 다음 주 학생 어머니한테 전화를 했어. 사정을 전했지. 알았어요, 하고 전화를 끊더라고.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어야지. 다음날 그 학생 올 줄 알았지. 안 나오데. 전화했잖아. 신호만 한참 울리더니 수신되지 않았다는 여자 목소리만 들리더라고. 개학한 지 10일 만에 학생이 나오더라고. ‘엄마는 왜 담임 전화 안 받는데?’하고 말했지. 그 학생이 ‘내가 중학교부터 꼴통짓 많이 해서 우리 엄마는 학기 초에 담임 전화 받고 나면 담임전화 번호 수신거절 번호로 등록해 버리는데요.’하고 말했어. 그날 이후로 교사생활 해오면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벗어던지기로 했어. 학교 안팎에서 어떤 상황을 보더라도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지켜보기만 하고 내 생각, 감정, 판단, 기억 따윈 지워버리기로 했지.”
“친구야, 할 말 없다. 그나저나 이전에 술자리 한번 했던 네 선배 교사 최 선생님은 잘 계시냐?”
“자네 뚱딴지처럼 최 선배 이야기를 왜 꺼내?”
“신문 보니까. 2019년 2월 말 교사들 명퇴 신청자는 6039명이라 그러대. 최근 3년간 2월 말 명퇴 신청자 수는 2017년 3652명, 2018년 4639명, 2019년 6039명이라고 하더만. 2년 전보다 2387명, 1년 전보다 1400명이 늘었더라. 최 선생은 명퇴 안 했어?”
“안 했어. 그 선배 정년퇴직 6개월 남았어.”
“그 최 선생님은 정년까지 간다고? 대단한데!”
“최 선배 열정은 초임 그대로야!”
“그렇구나.”
“자네는 최 선배 한 번 봤을 텐데 여태 기억하고 있었어?”
“어떻게 그 선생님을 잊을 수 있어? 내가 처음 만난 술자리에서 교사들 험담했잖아. 술도 마셨겠다. 나이도 30대 초반 아니었나. 학창시절 교사들에게 체벌당한 기억에 욱해서 말이야. 그때 최 선생님이 ‘형 씨요, 교사는 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답할 수가 있어야지. 그때 최 선생님이 ‘교사는 영혼을 살찌우는 사람이다.’하고 고함쳤지. 내가 ‘앗, 뜨거’하며 바라만 봤지. 최 선생님이 ‘저는요. 손잡이에 기氣라고 한자를 써놓은 회초리로 체벌하며 모난 학생의 성질 머리를 다듬고, 호통을 쳐서 삐뚤어진 학생의 마음을 세우고, 으름장을 지르면서 숨어있는 비열한 발톱이 나올 구멍을 막는다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려면 약도 필요하고 수술도 필요한데 교사가 학생의 영혼을 살찌우려면 여러 가지 방법을 써야 안 되겠어요.’하고 소리 질렀지.” “자네, 기억력 좋네. 한 번 술자리 같이 했는데 그걸 20년이 다 돼가는데도 기억하고 있네!”
“자네, 올 3월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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