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화가가 들려주는 그림이야기] 세상의 아픔을 기록하고, 세상의 변화를 그린 화가. 벤 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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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4-29 17:32 조회4,288회 댓글0건본문
지난해 4월 초에 경북 의성의 산수유를 그리기 위해 다녀온 적이 있다. 척박한 땅에 벌이가 될 것이 없는 궁한 시절, 마을 곳곳에 산수유를 심어서 그 열매를 수확하여 번 돈으로 먹을 것과 자식들 공부를 시켜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4월이면 노란 꽃 세상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나선, 지난해 내내 봄의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어찌 된 노릇인지 올해 4월은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벌어진 터라 어수선하기도 하고, 기온조차 서늘해서 봄이 온 건지 실감을 잘 못하게 된다. 날씨와 상관없이 산이나 도시의 수목들은 어김없이 꽃들을 일제히 퍼트리니, 그 꽃들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면 우울한 요즘 세태에 조금의 위안이 되곤 한다. 그렇게 자연은 순리대로 흘러가는데 우리네 삶은 녹록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순리보다는 힘을 가진 사람들, 혹은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때론 생명조차도 가져가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분노와 허탈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의 힘에 의해서, 혹은 공권력에 의해서 나의 삶이 속박되고, 나의 몸이 구속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누구에게 나의 부당함을 말해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일이 1921년 미국에서 일어난다.
1921년 4월 15일 미국 보스턴의 근교에서 봉급 호송 요원의 살해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구두 직공이었던 니콜라스 사코와 가난한 생선장수였던 바톨로메오 반제티를 사건 용의자로 체포하고 1급 살인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행위와 상관없이 그들이 이민 온 이탈리아계 노동자였고, 무정부적인 정치사상을 가졌다는 당시의 편견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범죄 현장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으며, 도난당한 봉급도 그들에게서 발견되지 않았다. 재판은 그들을 용의자로 간주하고 부당하게 진행되었고, 국내외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당대의 최고 지성인과 법관인 하버드대 총장, 매사추세츠 총장, 전직 판사 세 사람으로 구성된 독립 조사위를 꾸리지만, 본인들의 체면과 위선으로 사형집행을 허락하고, 그들은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재판과정에 대한 의혹과 부당함에 대해 많은 사람은 격분했는데, 이러한 과정을 그림 연작으로 제작하여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면서 현실에 대한 발언을 한 화가가 벤 샨(1898~1969)이다.
대표작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은 세 명의 조사위원 아래 희생된 사코와 반제티의 모습이 보이면서, 사법살인의 형상을 나타낸 작품이다. 이로써 당대의 이민 사회에 대한 문제와 도시 빈민층의 고단한 미국 사회현실을 표현하고, 사회변화를 이루고 참여하는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대표작가로 알려진다. 벤 샨 역시 리투아니아 출신 이민자였으며, 어머니를 따라 8살 때 1906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부르클린에 정착하고, 극심한 가난함 속에서도 공장에서 번 돈으로 미술대학에서 공부하였기에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필연 적인 것 같다.
1930년 세계공황은 전 세계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벤 샨에게는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전역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된다. 조금 더 현실에 접근하게 되고 그만의 미술 양식을 가지게 된다. 사회적 풍경과 더불어 인간 내면의 풍경을 형상화하면서도 외로움, 쓸쓸함과 동시에 아이들의 모습에 나타난 해맑은 모습을 표현한 작품을 제작한다. 특히 <해방>은 프랑스가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쁨과 허탈감을 함께 표현했는데, 의미와 상관없이 천진하게 노는 아이들의 박진감 있는 놀이에 동참하고 싶을 정도이다.
붉은색의 집안에 두 손을 부둥켜 잡은 여인의 모습이 심상찮다. 노모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데, 천장 가까이에 광부의 바지만 덩그러니 걸려있고 문밖에는 두 사람이 현 사태의 심각성을 얘기하는 듯 멀찍이 서 있다. 이렇듯 인간에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안타까움을 그린 <광부의 아내>는 조금 더 확장된 그림세계를 보여준다.
<봄>이란 작품은 195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이다. 왠지 불안정해 보이는 화면이지만 봄을 즐기는 연인에게 시선이 멈추게 된다. 연인의 붉은색과 파란색의 강렬함으로 시선이 가지만 가장된 원근법 때문에 불안정한 공간에 처한 연인의 처지가 보인다. 평화롭지만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암시하는 것처럼.
‘내가 유일하게 증오하는 것은 부당함입니다. 어려서부터 나는 불의를 증오해 왔고, 내 평생 동안 그 마음이 지속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벤 샨이 한 말이다.
그의 말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예술적’일 수는 있어도 ‘예술’은 될 수 없는 상품을 그리는 많은 화가에 대한 일침이자 동시대의 현실을 바라보고 표현해야 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불의를 저지르는 그 잘난 위선적인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죗값을 물어야 하고, 그들의 행위에 대해 방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봄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4월의 많은 아픔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고, 봄에만 볼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빛나는 꿈의 계절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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