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에 취하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에서 "안녕, 지난날이여"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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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기획연재 | [그 노래에 취하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에서 "안녕, 지난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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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10-01 10:45 조회2,8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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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여름은 지나고

 

그래도 나는 여름이 좋아!” 차를 몰면서 나는 계속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더워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나는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고 했다. 온 천지가 연둣빛으로 차오르는 늦은 봄부터 나는 그 색깔의 기운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푸른 산, 푸른 들녘부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까지 최대한 눈에 담아놓고자 했다. 왜냐하면, 여름이라는 젊은 계절은, 그 폭죽처럼 터지는 초록의 힘은, 머지않아서 끝나고 말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꾸만 여름을 저장해두려는 강박은 아마도 내 젊은 시절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 초록의 힘이라도 잡아두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을 덤덤히 따라갈 수 있는 내공이 나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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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플레시 고티에 비올레타로 이어지는 비련의 여인

 

19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에 마리 뒤플레시(Marie Duplessis, 1824~46)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당시 파리 사교계에는 돈 많은 남자들이 젊고 예쁜 애인을 파티장에 꽃장식처럼 데리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 여인을 코르티잔’(cortesean)이라 불렀는데, 마리 뒤플레시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미모의 여인이었다. 이 여인을 사랑한 사람 중에 소설가 뒤마 피스(Alexandres Dumas fils, 1824~95)가 있었다. 뒤마 피스는 <삼총사><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사생아였다.

 

그는 마리 뒤플레시와 사랑에 빠져 1년간 동거했지만 결국 헤어졌고 뒤플레시는 페레고 백작이라는 또 다른 불빛을 찾아 날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백작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서 결혼하지 못한 채 다시 파리로 돌아왔는데 그때는 이미 폐결핵이 심해진 뒤였다. 뒤플레시는 이듬해인 1846년에 22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혔다.

 

뒤플레시가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사랑하던 뒤마 피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동백꽃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이라는 소설을 썼다. 파리 사교계의 사치스럽고 냉정한 모습 속에서 짧게 꽃피었다가 사라진 비련의 여인을 다룬 이 소설은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눈에도 이 소설이 들어왔다. 베르디는 이 화려하고도 슬픈 연애담에 매료되어 즉시 대본 작업에 들어갔다.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의 대본, 주세페 베르디 작곡의 걸작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는 그렇게 탄생했다.

 

제목으로 붙인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길 잃은 여인또는 타락한 여인이라는 뜻이다. 마리 뒤플레시라는 실존 인물은 소설에서 마르게리트 고티에라는 이름이 되었는데, 베르디의 오페라에선 다시 비올레타 발레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드디어 베르디의 신작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185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페니체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그러나 초연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역사극이나 신화극에 익숙한 청중들은 동시대의 이야기, 그것도 코르티잔 같은 부류의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페라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초연의 주인공을 맡은 소프라노가 폐병으로 죽어가는 가녀린 여인을 연기하기에는 너무 뚱뚱해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칫하면 실패작이 될 뻔한 이 오페라를 베르디가 다시 다듬어 내놓았고, 그제야 청중들은 이 곡이 가진 힘과 매력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오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10대 오페라에 항상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과거에 표기하던 춘희椿姬 라는 제목은 바로 소설 제목인 <동백꽃 여인>의 한자식 표현이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한국에서 한국 단원에 의해 정식으로 공연된 최초의 오페라이기도 하다. 19481, 서울의 부민관에서 상연되었으며 당시의 비올레타 역은 소프라노 김자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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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 너무나 짧았던 그녀의 여름날

 

이제 오페라 속으로 들어가 보자.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활동하고 있는 비올레타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언제나 자유롭게 살며 순간을 후회 없이 즐기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즐기되 남자와의 사랑에는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원칙은 깨어지라고 있는 것, 지방에서 올라온 알프레도라는 남자의 정열적인 고백에 비올레타의 맘이 흔들린다. 결국 두 사람이 동거에 들어가자 이 소식을 들은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비올레타를 찾아와 헤어지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부탁에 마음이 약해진 비올레타는 편지를 써놓고 알프레도의 곁을 떠나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알프레도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비올레타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붓는다. 이후 비올레타는 사교계를 떠나 홀로 폐병과 외로움에 신음한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찾아와서 함께 떠나자고 말하지만 이미 병이 깊어진 비올레타는 연인의 팔 위에서 숨을 거둔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자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지만 베르디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인 이야기였다. 파리 사교계의 위선적인 모습. 부자들의 이기심, 코르티잔이라는 존재, 그녀의 열정과 희생 등, 당시 사회의 사실적인 풍경이 오페라 무대에 턱 하니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거장 베르디의 음악은 어느 한 곳 버릴 데가 없다. 막강한 서곡과 관현악적 효에다 <축배의 노래> <언제나 자유롭게> <프로벤차 내 고향> <파리를 떠나서> 등의 멋진 독창, 이중창, 합창이 듣는 이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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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곡은 3막의 후반부에서 비올레타가 부르는 노래다.

병상에 누운 비올레타는 이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곧 찾아가겠다는 알프레도의 편지를 받는다. 그러나 비올레타는 이미 상황이 늦었음을 알고 있다. 화려한 모든 시절은 가버렸으며, 모든 꿈은 끝났다. 이 절절한 노래를 부르며 비올레타는 삶의 마지막 길로 걸어 들어간다. ‘길을 잘못 든 여인’(La traviata)이 부르는, 너무나 짧았던 그녀의 여름날에 대한 탄식가다.

그렇게도 여름날이 계속되기를 바랐지만, 어느새 저녁 공기가 차가워졌다. 초록 잎은 이미 기운을 잃은 채 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엄숙한 자연의 이치를 무슨 재주로 막겠는가. 다만 애달픈 노래 한 곡으로 떠나는 여름을 기릴 수밖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절처럼 지난여름은 위대했습니다라고 독백할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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