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이타自利利他 운명을 바꾸는 첫 걸음 - 료범사훈了凡四訓 그 법석으로 1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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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법석 | 자리이타自利利他 운명을 바꾸는 첫 걸음 - 료범사훈了凡四訓 그 법석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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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10-01 14:13 조회1,9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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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이타自利利他 운명을 바꾸는 첫 걸음

료범사훈了凡四訓 그 법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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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관음사 회주᛫조계총림 송광사 율주 지현스님

 


(싱잉볼 Singing Bowl) 종소리 들으셨습니까? 종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누군가의 답,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에 있으면 종을 안 칠 때도 들립니까? 종에서 난다면 종을 안 칠 때도 나야 하잖아요. 종채에서 난다면 종을 안 칠 때도 나야 하구요. 종과 나는 별개이기 때문에, 종소리가 난다고 해도 내 귀가 없다면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 종채로 이렇게 종을 치면 이 인연으로, 이 종치는 내가 있고, 종소리를 듣는 여러분의 귀가 있고, 또 이 허공이, 이 공간이 종소리를 여러분 귀까지 전달하고, 들었던 귀가 , 이것은 종소리구나!’라고 인식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인연으로 종소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연 하나 하나를 따지면 귀도 종소리는 아니고, 종소리라고 인식하는 것도 종소리가 아니고, 종채도, 종도 종소리는 아닙니다. 이 허공도, 나도, 여러분들도 그렇구요. 그러면 종소리는 종소리 아닌 것으로 이루어졌다는 얘기지요.

종소리만 그럴까요? 이 세상 모든 것이 인연화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하나하나가 영원불변하는, 즉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실을 자각하면 어느 하나만이 필요하고 어느 하나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각자 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건강하다, 병들었다, 혹은 나는 가난하다, 부자다, 또 나는 뭐다 그런 것들이 다 있으나 그런 라고 하는 것이 어디에 있나요? 나의 현주소는?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부모님 없이 태어나신 분 없습니다. 부모는 과거의 나이며, 자식은 미래의 나입니다. 물론 나는 현재의 이기도 하지만 이 속에 자식도 있고, 부모도 있는 것이지요. 숨 안 쉬고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공기도 내 생명이에요. 그럼 물 안 마시고 살 수 있나요? 없습니다. 물도 내 생명이에요. 땅 없이 살 수 있나요? 없습니다. 대지도 내 생명이에요. 태양 없이, 열기 없이 살 수 있나요? 없습니다. 태양도 내 생명이에요. 자연의 모든 현상을 불가佛家에선 지수화풍地水火風, , , , 공기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을 소우주라 하고, 전체 우주를 대우주라고 합니다. 내가 물과 공기가 필요하다면 물과 공기가 필요한 다른 생명 역시 내 생명입니다. 이처럼 대지에 사는 모든 생명, 우주에 사는 모든 생명 또한 내 생명입니다. 그렇기에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뿐만 아니라 삼라만상 그대로가 다 자기 얼굴인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 우주만물이 다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전체가 다 부처님의 법신이기 때문에 빗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또는 경전을 읽는 소리, 시장에서 서로 장사하는 소리 등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그대로 법신의 설법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서 불교가 시작되는 겁니다.

불교 공부를 하는 것이, 내 체중은 얼마고, 내 성격은 어떻고, 이름은 뭐고 하는 그 작은 나에 갇혀 있는 나를 우주 전체의 나로, 이것이 진짜 나라는 사실을 자각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불법을 배워 가면서 점점 가 커진다는 것이지요.

 

부모가 불행하다면 나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내가 불행하다면 부모는 편안하실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금쪽같은 자식들이 아파서 병원을 왔다 갔다 한다면 불행을 느낄 겁니다. 이렇듯 나의 아들과 딸, 내 부모까지는 하나로 잘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아플 때, 아버지 어머니가 아플 때만큼 많이 아픕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중생들의 마음입니다. 나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부모와 나, 자식과 나를 하나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이것을 유연有緣이라 하고, 인연이 있는 사랑이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자비는 무연대자無緣大慈.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이 없는데도 모든 중생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겁니다.

 

자식이 교도소에 들락거리고,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면 내가 대신 그 고통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이 마음을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합니다. 동체는 한 몸이라는 것이 고, 비심悲心이라고 하는 것은 연민심, 동정심이라고도 하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긍휼矜恤이라는 말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자비, 대자, 연민 이것들은 결국 나와 무관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함께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면서 생활을 함께하는 겁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중생과 함께하는 것, 그 중생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고, 그렇게 함께하면서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줄 수 있는 힘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충성[]이라 하고, 부모를 위하는 마음을 효 라고 합니다. 부모를 위해서 효도할 때는 갈력竭力, 힘을 다하라고 그랬습니다. ‘너의 힘껏 부모를 모셔라.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까지 버려라이것이 동양 전통의 충효문화입니다. 그런데 나라는 부모보다 큰 단위입니다. 이렇게 봤을 때 나의 인연은 나라, 부모 그 다음에는 자식, 부부, 형제 이런 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연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사랑의 크기가 조금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지요. 나라를 위하는 것이 제일 크다면, 부처님 법대로 우주법계가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너무 크기 때문에 현실 생활 속에서 그 큰 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나라가 잘못 되어도 내가 밥 먹는데 큰 문제가 없으니 나라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부모가 굶거나, 아파서 누워 있으면 내가 음식 먹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것은 가깝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이웃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내 음식을 나눠 주기 위함입니다. 극단적인 가난은 굶주린 자를 도둑이나 강도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에 배고픈 사람이 없도록 해주는 것, 이것도 내 행복을 위해서 절실하게 필요하고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남들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이 커져서 남들을 많이 도울 때, 남들도 내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그러기에 큰 행복을 원할 때는 남들을 많이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작은 행복을 원할 때는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금생의 나도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주변도 괴롭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살면서 어떤 경우에라도 남을 해치지는 말아라.’,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말아라.’ 또는 할 수 있는 한 남들에게 선행을 하라고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득이한 경우라도 남들을 해쳐서는 안 된다, 가능하면 도와주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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