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승 | 대반야로 나아가는 반야용선의 선장 - 동국대 제40대 이사장 법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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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8-16 13:50 조회2,474회 댓글0건본문
1945년 남해에서 태어난 법산스님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남해 화방사로 출가를 했다. 너나없이 삶이 고단하던 시절,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품고 출가를 했으니 영원한 공부인으로서의 포부는 주효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방송통신학교를 통해 중 ∙고등 과정을 마쳤고, 1967년 당시 마산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특강 차 학교에 온 서경수 동국대 교수의 눈에 띄어 동국대 편입의 인연이 닿은 것이 불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서경수 교수는 범어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스님을 발견했고, 그에 따라 종립학교로의 안내자가 돼 준 셈이었다. 출가 승려라는 신분이 우선이었지만 법산스님은 범어를 익혀 대승경전을 줄줄 욀 정도로 공부에 탁월했던 까닭에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고 탄허스님에게 사서삼경, 도덕경, 장자, 노자와 같은 동양철학 전반을 배운 것은 스승 복도 남부럽지 않았다는 자평이다.
일찍이 원 없이 공부하는 서원을 품은 탓이었을까. 스님은 박사과정을 마친 후, 동국대에서 강사로 활약하며 스스로의 배움과 함께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성큼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나 경을 보고 강의를 하면 할수록 경전에 대한 갈증이 더해졌고 결국 대만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1980년 9월 대만 중국문화대학 철학연구소에 입학하여 6년간의 유학생활을 하며 중국 선학을 터득했고 중국고대철학사상을 공부하는 기회도 얻었다. 그랬으니 자연 인도철학, 중국철학을 넘나드는 눈이 열렸고 6년 뒤인 1986년 ‘보조국사 지눌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스님은 동국대 선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동국인으로서의 행보를 예고했다. 이후, 동국대 불교대학장, 불교대학원장, 정각원장, 불교문화연구원장을 역임하며 종립학교에서의 소임을 두루 거쳤고 전공분야인 보조사상연구원장, 한국선학회장, 인도철학회장, 한국정토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교 안팎의 모든 소임을 섭렵했다. 그만큼 학승으로서의 자질을 고루 갖추었다는 설명이다.
스님의 일상은 금강경으로 시작된다. 금강경 독송을 한 지, 올해로 21년 째인 스님은 날마다 금강경을 독송하여 이제 5만독 독송을 성만했다. 그렇다면, 스님에게 금강경 독송은 어떤 의미일까? “금강경은 본래 자성의 청정한 마음을 찾아가는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성냄, 미움이 일어나지 않는 큰 힘을 주기도 하며 맑은 정신으로의 안내자이기도 합니다. ‘금강’은 대반야의 길을 찾아가는 최상의 법도입니다.”라는 것이 5만독을 독파한 스님의 소회이자, 종교관이기도 했다.
스님은 동국대 이사장 소임을 맡기 전, 많은 시간을 통도사 시탑전에서 보냈으며 오랫동안 결제철이면 선방에 방부를 들여 참선수행을 이어갔다. 그것은 학승으로서 자칫 글에 매이는 편견을 벗을 수 있고, 선 수행을 통해 내면의 공부를 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자 하는 소신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理∙사事에 자유로울 수 있는 출가자의 본분에 부합하는 노력을 부단히 하며 살았다 할 수 있다.
하여, 지난해 겨울에도 함양 남산사 고경선원에서 겨울 한철을 나며 내면 다지는 일에 고삐를 죈 적이 있다. 모름지기 일흔 중반의 노구로는 쉽지 않은 정진이었을 테지만 해제 후, 스님의 소회는 특별했다. “본래자성을 들여다 본 시간이었습니다. 육진六塵을 여의고 육근六根에 집착하지 않는 부모미생전의 본래면목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반야지를 향한 훈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따로 미움 원망도 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또 확연히 터득한 날들이었습니다.” 라는 설명이었다.
또한 스님은 지난해 조계종 대종사 법계를 품수받았다. 그간 조계종 승가고시위원장과 교육원 교육위원을 지내며 승가교육에도 기여한 바가 큰 스님은 두 차례에 걸쳐 총무원장 표창과 포교원장 표창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종정 표창패를 받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95년에는 문화체육부장관 표창을 2001년에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으며 승가교육과 불교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한 법산스님은 경봉 노스님의 법상좌로서 경봉문도회 문장을 맡아 다년간 경봉스님의 승풍을 진작시키는 일에도 앞장섰다. “우리 스님, 생전에 그런 당부 많이 하셨습니다. 스님들이 수행을 잘 이어가야 신도들이 바뀐다고 말이지요. 그 말씀은 승려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된다는 말씀이었던 겁니다. 그 순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올바른 승가교육을 원력으로 실현하여 반야지혜의 문을 열어줘야 합니다.”라는 요지였다.
바로 그런 철학이 요소마다 주효했던 모양이다. 지난 7월 18일 스님은 학교법인 동국학원 동국대 제40대 이사장에 취임하고 학승으로서의 최고 반열에 올랐다. 스님은 취임의 변을 이렇게 밝혔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분상에서 자신의 노릇을 할 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직분 수행에 충실하여 향상의 길로 매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야의 길이 동국의 발전임을 알아, 이행하는 소임자가 되겠습니다. 그간 교육자와 수행자로서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개교 113년이 되는 동국대를 반석에 올려놓은 이사장 자광스님의 덕화를 이어 동국대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의 수지 독송이 안내한 수행의 길이었을까. 금강과도 같은 변하지 않을 신념이 한 수행자의 수행여정에 방점을 찍는다. 오롯이 한 길을 걸어왔음을, 오롯이 수행이었음을 시사하는 향기로운 마침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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