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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처럼 부산불교역사를 환히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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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25-02-25 10:49 조회1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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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현익채 교장 (전 금정중 교장)
 

구글 AI에게 물어봤다.
‘걸어다니는 부산 불교 백과사전이 누구인가요?’
바로 서치랩스(Search Labs)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말한다. ‘걸어다니는 부산 불교 백과사전’은 ‘현익채 법사’라고 답한다.
곧 출판할 『사진으로 다시 보는 근현대 부산불교』의 주인공이자 부산불교계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현익채 전 금정중학교 교장을 이번 초대석 인물로 모셨다.

 

현익채 교장의『사진으로 다시 보는 근현대 부산불교』 발간 시작점은 지난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대한 자료를 모았던 파일을 쌓아두기만 했던 것이 안타까워 ‘사진으로 보는 부산불교 100년’을 본지에 연재해 2024년 8월호까지 게재했다.

마지막 호에서 근현대 부산불교연표까지 완성했고 『한국불교총람 』, 『한국 불교현대사』, 『부산안내 』, 『대동지리지』 및 불교관련 서적과 신문을 참고하며 정리, 보완한 완성본이다.
『사진으로 다시 보는 근현대 부산불교』의 연재가 성공적으로 이어가면서 자료의 중요성을 다시 떠올렸고, 귀한 자료를 책으로 발간해야겠다는 사명감이 강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워낙 불교단체가 많이 사라졌잖아요. 그러다 보니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단체에서는 자료를 기반으로 하지 않아 부정확한 연혁을 가졌는데 그런 것도 바로 잡고 정확한 뿌리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어요.”


현익채 교장의 수집벽과 채증능력은 남다르다. 과거 초등(국민)학교 시절부터 모았던 통지표나 상장, 일기장 혹은 등록금 납부서까지의 모든 기록을 70년이 흐른 지금까지 소장한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비록 사학과 전공이 아니었지만, 항상 역사의 고증에 관심이 높았고 ‘자료’의 의미에 큰 의미를 뒀다. 자료수집 후에도 끊임없이 체크하고 기록하는 일이 ‘익숙함’으로 변해 오늘날의 현익채 이름 석 자를 빛내고 있다.
“역사는 사료에 의해 정확히 고증해야 합니다. 모 단체에서 1965년, 6월 5일의 내용과 6월 6일의 내용 중 하루차이로 어느 것이 맞는지 몰라서 정확한 기재가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제가 사진자료를 하나하나 찾아서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기도 했죠. 그럴 때의 보람은 큽니다.”
주변에서나 그의 가족조차도 그의 강한 자료수집 취미(?)를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그러나 현 교장의 수집활동은 오랜 굳은살처럼 그리고 버리기 힘든 습관처럼 굳어져 갔다.

현 교장은 단순한 자료수집광이 아니다. 인터뷰 도중 알아낸 그의 놀라운 능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연세 지긋한 분이라면 글자 하나 보기도 힘들고 익숙하기 힘든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자료를 정리한다. 
"가입한 부산 불교계 카카오 단톡방만 30개가 넘고, 밴드(Band)만 20개 이상 가입되어 있습니다. 제가 사실 디지털에 익숙하지는 못합니다. 제 딸이 돕기도 하고 예전에 제자가 홈피를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진자료를 앨범별로 정리하고 또 모으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 손이 익숙해져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한다. 그러면서도 전국의 주요 불교 자료를 모았고 전법을 행했다. 현재도 현익채 교장의 핸드폰 연락처에는 3600명이 넘는 스님, 불교인이 저장되어 있다. 그의 핸드폰 갤러리에는 사진자료를 줄이고 또 줄여서 남긴 사진 용량만 해도 250기가바이트(고해상도사진 2만5천장 가량)를 넘겼다. 이처럼 실존하는 백과사전의 핸드폰은 방대한 한국불교의 아카이브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이미 젊은 시절부터 다져진 기초체력이 전법원력의 기반이 되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하루 한두 군데의 모임을 꼭 나갔습니다. 그리고 불교교육대학의 사무일도 봤고요. 밤 10시가 되어 모임에서 돌아오면 제대로 먹지도 않고 일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쇠약해져 병도 있었고 위기도 있었지만 모두 부처님의 가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늘 불교에 대한 열정과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 고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력이 쇠해져 자료수집이나 저서활동은 그만두고 건강관리만 하겠다는 그의 다짐에는 믿음이 가지 않지만, 줄어드는 인구 역시 불교계 인구 감소의 위기로 이런저런 염려가 많아 그의 발걸음은 멈추진 않을 거라 예상한다.


경북 경산시 임당동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팔공산 염불로 두 누나들 에 이어 태어난 귀한 아들이었다. 동래고 시절, 남은 논을 정리하고 가족 모두 가 힘을 모아 1965년 부산으로 이사했다.
현 교장은 늘 뉴스에 관심이 높았기에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했다. 입학 후 학구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 불교동아리 활동을 바로 시작했고, 매주 소림사에서 열었던 부산지부 법회에 참석했다. 그러면서 1971년 500명 대학생을 대표하는 부산시불교연합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10여개 이상의 불교단체를 창립하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보태기도 했다.
그는 1970년 대불연 부산지부 제4차 수련대회를 잊지 못한다. 당시 주지인 지관스님(전 총무원장)에게 부산지부 총무였던 현 교장이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더니 친서로 환대했다고 한다.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에서 고암 종정스님의 법 어와 수계증 수여, 방장 성철스님의 친견은 한없는 법열을 전해줬다고.

Profile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부산대 교육대학원 부산최초 어린이회 창립(법륜불교어린이회)
前) 금정중 제14대 교장 (2006년~2012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부산지부장, 부산불교 홍법회장, 부산 중학생불교학생회 지도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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