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은하사 銀河寺 생전예수재 및 백중 고승 백일대법회 (2017. 6. 27) > 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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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김해 은하사 銀河寺 생전예수재 및 백중 고승 백일대법회 (2017.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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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7-09-28 15:37 조회2,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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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 請雨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지요? 예, 주지스님이 가뭄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래에 뉴스를 보면 가뭄 때문에 농민들이 너무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 김해지역은 농토가 많지 않습니까?

 

기우제 祈雨祭 니 청우제 請雨祭 니 하는, 비를 내리게 하는 제대로 된 의식이 있지만 이왕 우리가 윤 달을 맞이해서 100일간 기도입재를 하고 오늘 두 번째 모이셨으니 간략하지만 마음을 담아 ‘화엄 성중 華嚴聖衆 ’ 열 번을 부르고 청우제를 대신할까 합니다.

 

여러분들 화엄성중 아시지요? 화엄성중 안에는 주수신 (主水神 물을 맡은 신) , 주화신 (主火神 불을 담당하는 신) , 주풍신 (主風神 바람을 담당하는 신) 이 다 들어 있습니다.

 

축원할 때도 우순풍조 雨順風調 라는 말을 합니다.

비는 순조롭게 때맞추어서 잘 와주고, 바람은 알맞게, 너무 태풍이 불어도 안 되니까,알맞게 불어 주십시오. 하는 축원문입니다.

특별히 화엄성중 안에 모든 우주의 질서와 순환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신중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도 늘 화엄성중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온 우주가 다 내 한 마음에 녹아내리게 정성을 담아서 화엄성중 열 번을 우리 다 같이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화엄성중 華嚴聖衆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저희들의 이 작은 기도가 위로는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가호 아래, 그리고 천룡팔부와 모 든 8만4천 화엄성중님들의 가호로 한시 바삐 비가 알맞게 내려서 고통받는 우리 농민들 한을 좀 풀어주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 드립니다.”

 

보너스 한달, 윤달의 의미

 

생전예수재라고 하는 이 인연으로 우리가 모여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윤달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남은 달이다’라고 합니다. 대개 1년이 열 두 달인데, 금년은 음력으로 치면 열 세달입니다.

 

우리들 인생은 누구나 신분 여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올 때는 한 물건도 가져온 게 없어요. 옷 한 벌 가져오지 않았고, 심지어 기저귀 하나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서 어머니가 기저귀를 채워주고 이런저런 수건이다, 옷이다 등등 얻어서 사용하기 시작해서 지금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 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많이 가진 것 같지만 큰 차이 없고, 가난 하게 산다고 해서 없는 것 같지만 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쓰는 건 결국 비슷비슷해요.

 

아무리 넓은 평수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손치더라도 ‘삼조연하 三條椽下 와 칠척단전 七尺單前 이라’ 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기껏해야 서까래 세 개 정도 넓이면 누구나 다 그 안에서 잠을 잘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 밖에 사용하지 않아요. 아무리 집을 여러 채를 가지고 있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 거역공수거 去亦空手去 라, 올 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지만 갈 때도 빈손으로 갑니다. 누구 없이 다 빈손으로 가요. 어떤 특권층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살면서 아무리 바쁘게 살 고, 습관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쫓기며 살고, 여기 저기에 휘말리면서 바쁘게 살아도 그런 가운데 한 번씩 ‘아 올 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다. 갈 때 또한 한 물건도 가져갈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이 철칙에는 벗어날 수가 없다’ 는 사실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한 가르침은 그것을 ‘만반장불거 萬般將不去 요 유유업수신 唯有業隨身 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가 없다. 빈손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직 내가 지은 업 만 따라갈 뿐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지은 업만 따라갑니다. 지은 업이 선업이면 선업이 따라가고, 악업이면 악업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에서는 미세먼지 하나 없애지 못합니다. 그것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예요. 어 디서 불어와서 그냥 우리나라에 떨어졌을 뿐이고, 아무리 씻어내고 씻어낸다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지구가 처음에 생길 때, 숱한 별들이 부딪치고 깨지고, 인력으로 뭉치고, 뭉쳤다가 흩어지고, 그러다가 어느 기간 동안 살다가 이 지구가 소멸할 때 우리 육신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다른 별들과 부딪치고 깨지고, 이리 당기고 저리 당기고 하면서 다 미세먼지로 흩어집니다. 그런데 그 미세먼지 하나도 없애지 못해요. 어떤 형태로든지 그대로 다 남아 있습니다. 다시 인력에 의해서 이리 뭉고, 저리 뭉쳐서 이 지구를 위시한 저 많고 많은 별들이 생깁니다. 가까운 달로부터 태양계에 있는 여남은 개의 별들 그리고 저 밤하늘에 떠 있는 많고 많은 별들이 있습니다. 태양보다도 수 만 배 나 더 큰 별들까지 있어요.

 

그 별들의 숫자가 얼마인지 압니까?

이 지구에 있는 모래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 해운대 백사장에 있는 모래알, 여기 낙동강변에 있는 모래, 서해변에 있는 모래, 동해변에 있 는 모래, 또 사막이 좀 많습니까? 아프리카니 중국 서부 쪽에 큰 사막들, 엄청 큰 사막들이 있는데 거기의 모래 숫자가 얼마나 되겠어요?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 지구상에 있는 모든 모래 숫자보다 도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숫자가 더 많습니다.

 

이 지구를 위시해서 달과 태양과 금성 목성 토성 명왕성 등등, 우리가 익히 아는 가까이 있는 별 들 뿐만 아니라 이름도 없는 별들, 수억 만 광년 저 끝에 가도 역시 별들이 있습니다. 우리들 중생 의 숫자도 그와 같이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도 흩어지지도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절대 없어지지 않고 형태를 바꾸고 운명을 바꾸고 팔자를 바꿔가면서 그 사람의 업을 바꿔가면서 새로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태어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이예요. 어떤 경우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민으로부터 대통령에 이 르기까지, 날품팔이 하는 사람에서부터 한 달에 수억을 받는 그룹회장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그 철칙에서는 벗어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오직 업만 따라간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안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선업 을 닦아야 합니다. 살기에 바쁘고 이리저리 쪼들리지만, 그래도 우리가 선업을 닦아야 합니다.

 

윤달은 1년 가운데 한 달이 공짜로 생겼으니 이 얼마나 선업 닦기 좋은 기회입니까.

예를 들어서 월급 받고나서 보너스를 좀 받았다 칩시다. 보너스 이거 공짜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쓴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이지요.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보너스 받았을 때 좋은 일 한번 해야지. 이웃집이 아주 가난해서 아이들 학비도 제대로 충당하 지 못하는데, 단 1, 2만원이라도 학비에 좀 보태주도록 해야지.’ 그런 마음을 내어서 보너스를 쓸 줄 알아야 그 사람이 정말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양로원 같은 곳에 큰 돈이나 큰 물건은 아니라도 다만 라면 한 박스라도 사가지고 가서 공양을 올린다든지 하면 그 역시 보너스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올해 윤달을 맞이했어요. 보너스 한 달을 받았습니다.

 

이 달은 우리 불교하고 인연 맺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알고 어떤 경우든지 간에 잘 쓰라고 있는 달입니다. 보너스 한 달을 잘 쓰라. 기도 열심히 하고, 부처님께 참회 열심히 하고, 경전 열심 히 읽고,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 열심히 하면서 부처님과 가까워지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괜히 쓸데없이 자기가 지어놓지도 않은 복을 공짜로 바라지는 말아야 합니다. 신심만 지극하게 내면 거기에 저절로 따라오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은 하되 결코 대가는 바라지 말라는 것이 부처님이 일러주시는 큰 가르침입니다.

 

금강경을 우리가 소의경전이라고 수지 독송하지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좋은 일은 많이 하되 대가는 바라지 말라’ 는 것입니다. 좋은 일 많이 하되 대가는 바라지 말라. 자기가 한 좋은 일이 대 가를 바라든 안 바라든 그것이 어디 가겠습니까? 절대 딴 사람에게 가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오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윤달을 그냥 함부로 보내지 말라고 합니다. 복 짓기 좋은 기회 이고, 공덕 닦기 좋은 기회이고, 참회하기 좋은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불전에 가서 기도하고, 법문 듣고, 부처님이 가르치신 그 높고 높은 이치, 인과의 이치를 깨달아서 모든 것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이치’에 환하게 밝아서, 그 이치를 다른 사람에게도 깨우쳐주고, 내 자신도 마음이 안정이 되고, 괜히 지나치게 헛것 기다리지 말 고,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윤달 예수재입니다. 윤달의 이치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단 한권의 책을 고르라면 화엄경입니다

 

저는 어떤 기회에 어느 절에 가서 법회를 하든지 간에, ‘가장 불교에서 값지고 소중한 것을 내가 베풀고 가르치고 말씀드리고, 전할 수 있으면 책이라도 전해야 되겠다. 그래야 나에게도 복이 되 고 신도님들에게도 복이 된다.’ 는 신념을 가지고 평생을 삽니다. 그래서 오늘 책을 한 권씩 가지 고 왔는데 주지스님이 청하지도 않고 내가 그냥 보낸 거예요. 그러니까 주지스님, 이것 절대 부담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혹 스님들이 부담을 가져요. ‘아이고, 내가 책을 가져오라 소리도 안했는데 가져왔다 ‘저 책 값을 얼마를 줘야 되나? ’ 그런 생각을 하는 주지스님들이 있어요. 그런 생각하면 내게 오히려 감복입니다. 복을 감하게 되니까 나는 그러기 싫어요. 그러니까 절대 부담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이 화엄경을 가지고 왔느냐? 대방광불화엄경을 가지고 왔느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 성인이 두 분 계시는데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입니다. 그 스님들은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지, 한 300여년이 지난 뒤에 신라 때 우리나라에 계셨던 분들입니다.

 

그 분들은 아주 뛰어난 머리로 불교공부를 다 하고 나서 ‘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 있고, 모든 중생들에게 널리 전해주고 싶은 것이 바로 이 화엄경이었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원효스님이 천 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화엄경을 설하셨다고 해서 천성산 화엄벌이 있습니다. 의 상스님은 전국에 화엄10찰이라고 하는 유수한 사찰을 지어서 화엄경을 가르쳤습니다. 은하사가 범어사 말사잖아요. 범어사는 의상스님이 화엄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지은 절입니다. 물론 가야 불교로 이야기하자면 은하사는 범어사보다도 먼저 생기긴 했지만 또 범어사와의 관계를 가지고 이야기 하면 은하사 역시 화엄경을 가르쳐야 옳습니다. 본사가 화엄사찰이니 말사도 역시 화엄경을 가르쳐야 옳은 것이지요.

 

물론 본사가 한다고 해서가 아니고 위대하신 원효스님과 의상스님께서 불교공부를 다 마치고 나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화엄경이었다’ 라는 사실이, 그만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화엄경은 천하의 제일서 第一書 입니다. 천하에서 제일가는 책이예요. 이 세상에는 수억 종류의 책 이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의 가정에도 아마 책이 수 십권 내지 수 백권씩은 다 있을 겁니다. 많은 경우는 천 권이 넘는 책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세상에 있는 책이 수천억 종류가 되는데 그 가운데 넘버원은 무엇인가? 화엄경입니다. 이 말 한마디만 오늘 들어도 여러분은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많고 많은 책이 있습니다. 성경으로부터 유치원에서 받아본 책들 초등학교에서 배 운 책들 중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등 성인이 되어서도 온갖 책들이 많잖아요. 그런 모든 책들 중에서 넘버원이 화엄경이다. 그것을 아셔야 돼요. 언제 그것 한 번 정리해본 적 있어요? ‘세상에 책이 저렇게 많은데 저 중에서 제일 좋은 책이 무엇일까? ’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이제 오늘에사 비로소 알았습니다.

여기 은하사 법당에서만 알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도 그렇게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항상 그 얘기를 하세요.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책이 뭔지 아느냐? 너 바보 아니냐? 그것도 아직 모르고? ” 

사정없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 근거를 대라.”

“아니, 이 세상에서 성인이 누가 있지? 우리나라 성인이 원효 의상스님이 계신단 말이야. 원효 의상스님이 선택하신 화엄경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만 믿고도 충분히 그렇게 이해한다.” 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럼 그 화엄경의 뜻이 뭡니까? 그 속의 뜻은 화엄경강설 81권 가운데 첫 권에 들어있 습니다. 뭐든지 처음 시작하면 반은 아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가져가셔서 한 백 번만 읽으십시오. 백 번만 읽으면 아마 화엄경의 반은 충분 히 알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소중한 것이라서 내가 이런 기회에 복 좀 지어야 되겠다 하고 가져와서 여러분에게 복을 짓는 거예요.

여러분만 윤달을 맞이하고 나는 안 맞았어요? 윤달을 맞이했으면 나도 복 좀 지어야지요. 그냥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 제일 복 지을 수 있는 것이 뭘까?

최고 좋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이 화엄경을 보시하는 것이 제일 복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가 가지요?

 

이대로가 화장장엄세계다

화엄경은 많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여러분 책 뒷면을 보십시오. 글이 넉 줄 있지요? 우리가 이 법당이 무너지라고 큰 소리로 합창해서 천천히 네 줄을 읽겠습니다.

법당이 안 무너지면 안돼요.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아, 이대로가 화장장엄세계요,

이대로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것을!

이것이 화엄경의 종지 宗旨 , 근본취지입니다.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이제 세상 불평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업에 의해서 잘못 보니까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대통령 바뀔 때마다 나는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그건 내 업 때문에 나오는 불평 이지 세상은 까딱없고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참으로 세상은 아름다워요.

 

본문을 한 번 보지요. 27페이지 시성정각 始成正覺 이라고 되어 있죠. 오늘 하루종일 할거니까 마음 탁 놓고 거기 첫 구절을 보지요.

 

여시아문 如是我問 이와 같이 제가 들었습니다.

 

한 장 넘겨서,

일시 一時 에 불 佛 이 재마갈제국아란야법보리장중 在摩竭提國阿蘭若法菩提場中 하시니라

 

참 친절하게도 한문에 음까지 다 달아놓았습니다. 한 일자를 누가 모를까봐 한 일 一 자에도 ‘일’ 이라고 음을 달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친절하게 만든 책이 없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마갈 제국 아란야 법 보리도량에 계실 때였습니다. 그 옆에 시성정각 始成正覺 비로소 정각을 이루셨습니다.

 

또 넘겨요. 그 다음에 장엄이 나옵니다.

 

땅의 장엄 기지 其地 가 견고 堅固 하야 금강소성 金剛所成 이니라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보신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아름다워라 세상이여라고 여기는 기껏 표현했는데, 책에는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 루어졌더라. 어디 신어산만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또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부 다가야만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온 천지가 전부 다이아몬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이아몬드로 못 볼까? 어리석어서 그래요. 무명업식이 가리고, 욕심이 가려서, 탐진치 삼독의 먹구름이 끼어서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못 보니 너무 안타깝지요. 만약에 맹인이 있다면 봄이 되어서 ‘진달래가 어떻고, 벚꽃이 어떻고’ 누가 옆에서 그런 소리할 때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얼마나 갑갑하겠습니까? 눈 밝은 사람은 그 아름다운 봄의 풍경을 잘 보고 잘 감상하고 느낍니 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인생도, 정말 제대로 우리인생의 참 이치, 진리에 눈을 뜨면 전부가 다이아몬드로 됐다고 하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렇게 알게 되어요.

 

맹인이 눈을 감고 세상을 아무 것도 못 보듯이, 우리는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 번뇌 업장의 어 둠에 가려서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못 보는 거예요. 세상은 진짜 다이아몬드입니다. 이것이 사실이예요.

 

‘저 스님이 기침도 하고 병도 드신 것 같은데 정신이상이 됐나? 어디가 다이아몬드란 말인가? 내 가 다이아몬드를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시집갈 때 그 다이아몬드 조그마한 것, 팥알만한 것 아니 좁쌀만한 것도 한 번도 얻어 걸리지 못한 그 다이아몬드로 이 땅이 온통 다이아몬드로 됐단 말인 가? 저 스님이 왜 저러시지? 그러나 제대로 인생의 눈을 뜬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고, 귀중하고 소중하고 값지게 보입니다.

 

여러분이 5척이나 6척쯤 되는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삶의 가치를 그 몸뚱이만한 다이아몬드와 바꾼다면 바꾸겠습니까? 왜 안 바꿔요?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아니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다면서 몸뚱이 줘 버리고, 내 생명 줘 버리고 다이아몬드로 받지, 왜 안 받아요? 아, 이제 알겠습니다. 내 생명이 없는데 다이아몬드가 6척이 아니라 산덩이만한 것이 있다한들 무슨 의미 가 있습니까? 그렇지요? 이제 깨달았네요.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 졌다는 말이 거 말이 아니고 진짜지요? 이런 이치입니다. 불법은 이런 이치예요.

 

이제 첫 시작을 했으니 화엄경이 이와 같은 이치를 쭉 설명해 가는데 그 한문 위에 음 달린 것 있지요? 그 음을 다 읽으세요. 그리고 나서 밑에 친절한 번역이 있고, 또 번역 밑에는 가끔 저 소견으로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책의 체제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에 광고가 있지만, 절대 사지 마시고 요 나눠드린 이 책 1권만 백 번을 읽으세요. 아셨지요? 1권만 100번.

 

화엄경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치를 우리가 알고, 우리 몸과 마음속에 있는 그, 어리석음의 찌꺼기를 윤달을 맞이해서 이런 좋은 법문을 들을 기회에 그냥 깨끗이 세척도 하고, 털어 내시기 바랍니다. 윤달을 세탁기 돌리는 달로 알면 되겠네요. 세탁기에 다 집어넣고 확 돌려서 그 삼독 번뇌로 찌들린 우리 영혼을 좀 깨끗이 씻어내는 그런 달로 우리가 알고, 맞이하고, 앞으로 남 은 기도도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수행을 하면 지혜가 생긴다

“유학 有學 은 유식 有識 이라.”

자꾸 배우면 아는 게 있어요. 우리 모든 불자들의 숙제는 해인사에 있는 8만대장경입니다. 아시겠지요? 숙제 그동안 얼마나 하셨어요? 이제 좋은 숙제 한 권 받았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공부할 거리가 많아요. 배움이 있으면 아는 게 있습니다. 안 배우고는 아는 것이 없어요.

 

“유수유지 有修有智 라.” 그런 말도 있어요. 수행을 자꾸 하면 지혜가 생겨요.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절도 열심히 하고 같은 일을 반복해서 끊임없이 하면 거기에 지혜가 생깁니다. 관세음보살기도 열 심히 한다든지, 지장기도를 열심히 한다든지, 일념으로, 망상부리지 말고 하면 지혜가 싹트게 되 어 있어요. 입으로는 그저 ‘지장보살 지장보살’ 습관적으로 하면서 생각은 놓치지 말고, 기도하는 동안은 딱 일념 되게 하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나는 왜 그대로인가? ’ 망상이 꽉 차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못했으니까 그대로이지요. 제대로 한 사람은 지혜가 생겨요. 그래서 모 든 이치를 저절로 알아서 안 배워도 모든 이치를 저절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유작 有作 이면 유복 有福 이라.” 복은 지어야 복이 있지, 짓지 않고 복이 있다는 이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작유복이라.” 복이 있는 사람은 언젠가 지었어도 지은 사람입니다. 전생에 지었어도 지은 사람이고요.

 

내가 그전에 일면스님이라고 오대산에서 같이 산 스님이 지금은 미국 가서 좋은 절에서 사는데 요. 그 사람이 참 복이 있어서 ‘어째서 저 사람은 저렇게 복이 있는가?’하고 면밀히 살폈습니다. 한 서너 철은 아마 같이 살았을 것입니다. 세 철이면 1년 반 정도 되는 해를 같이 오대산에서도 살 고, 통도사 취운암에서도 살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말하는 것하며 심지어 음식 먹는 것까지도 복 있게 먹더라고요.

 

우리 어른들한테 음식 함부로 잘못 먹으면 복 없이 먹는다는 핀잔 듣잖아요. 일거수일투족이 복이 있게 하느냐 복이 없게 하느냐가 다 있습니다. 그게 따라와요. 저절로 따라옵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런 이치를 알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이 있게 할 수가 있고 또 원래 복이 별로 있지도 않은 사람이 그 복마저 감하면서 하는 행동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법당에 기도하러 왔는데 혼자 좋은 자리 널찍하게 차지하려고 한다면 복 지으러 왔다가 복을 감하 고 가는 거예요. 좋은 자리는 연세가 좀 높은 분, 조금이라도 불편하신 분이 앉도록 잘 배려해주면 그게 보시입니다. 남 배려해주는 것이 보시예요.

 

하루 동안 이렇게 기도하러 왔다 가는 사이에도 복을 얼마든지 지을 수도 있고, 복을 얼마든지 감할 수도 있어요. 무엇을 들고 다니면서 나눠줘서만이 아닙니다. 나눠주면서도 복을 감하는 도리 가 있고, 받으면서도 복을 짓는 도리가 있어요. 마음 자세가 어떻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여러분 들이 운전하고 다니지요? 끼어들기 하는 차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아이고, 많이 바쁜가보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가시지 왜 지금 간다고 그러냐? ”고 하면서 살짝 웃으면서 양보하는 것입니다. 옆에 사람이 있다면 그런 이야기 하면서 서로 한바탕 웃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양보해주면 그 순간에 복이 또 쌓이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 통장 보면 틀림없이 아마 예상치도 않은 돈이 들어왔을 거예요.

 

이게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부처님으로부터 마 음 쓰는 방법을 배워서 마음을 그렇게 잘 쓰면 얼마든지 복을 짓기도 하고 복을 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작유복 有作有福 이라. 지음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 사람은 언젠가 지었겠구나, 틀림없이 지었으니까 저렇지.’ 그렇게 우리가 생각을 해야 돼요.

옛날 석가세존이 계실 때, 이웃의 촌장이 와서 부처님께 이런 것을 물었어요.

 

“부처님께서는 능력이 있으니까 악을 많이 지은 사람도 제도할 수 있겠네요?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 가도록 그렇게 할 수 있겠네요?” 워낙 부처님이 유명하니까 물을 만한 질문이지요. 요즘 대통령은 별 볼일 없지만, 옛날에 왕쯤 되면 죽는 사람도 살리고 그러잖아요. 그런 시절의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악을 지어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자. 그런데 그 사람을 어디 가서 빌고, 또 내가 무슨 방법을 쓰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옥에서 쉽게 무사통과로 나온다면 그것이 이치에 맞겠나, 안 맞겠나?” 그러니까 그 촌장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것은 이치에 안 맞거든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말했습니다.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자기가 지은 것을 어찌 나보다 더 위대한 어떤 존재에게 빌었 다고 한들 그게 나와서 되겠나? 나올 수도 없으려니와 지옥에서 나올 수도 없을려니와 나와서도 안 되고 나올 수도 없다. 반대로 기름단지를 못에다 던졌다. 그런데 기름단지가 저 밑에 가라앉았는데 거기에 기름이 있어서 기름이 계속 떠오르는데 ‘기름아 가라앉아라. 기름아 가라앉아라. 기 아 가라앉아라’ 한다고 그 기름이 가라앉겠는가?

 

복을 지은 사람, 선업을 지은 사람이 좋은 데에 가고 복락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못 받게 하고 복을 받지 못하게 하고 좋은데 못가도록 그렇게 빈다고 한들, 그 사람 복으로 가는 것 을 그것을 누가 말리겠나? 마치 기름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가라앉으라고 기도해 봐라 그 기름이 가라 앉겠나?” 그와 같이 우리가 지은 것은 저절로 자기가 받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 사례 도 있습니다.

 

공덕 닦으러 오다

 

신라 때, 경주 영묘사에 양지스님이라고 하는 분이 계셨어요. 양지스님은 아주 신통도 대단하셔 서 절을 많이 짓고 그랬어요. 절을 짓다가 뭔가 부족하고 예를 들어서 양식이 떨어졌다면 주장자 에다 큰 걸망을 하나 걸고 거기에 편지를 하나 써서 넣습니다. 그래서 공중에다 척 던지면 그 경주 시내에서 꽤 괜찮게 사는 신도 집에 그게 쓰윽 주장자가 가서 문앞에서 딸랑딸랑 저절로 흔들립니 다. 그 집의 신도님이 딱 나와서 ‘아, 양지스님이 보냈구나! ’ 하고 주장자를 받아서 걸망을 풀어보 면 ‘지금 신도님들이 와서 절을 짓는데 울력을 한다.’ 일을 다같이 하는 것을 울력이라 그래요. ‘울력을 하는데 양식이 좀 떨어졌다. 그러니까 양식 빨리 보내라.’ 그렇게 써져 있으니까 신도님 이 얼른 그 걸망에 쌀을 한 푸대 담아 가지고 하늘로 올리면 주장자가 또 저절로 쑥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양지스님 절인 영묘사에까지 도착했다고 하는 역사도 전해지는 훌륭한 스님입니다.

 

신도들이 많이 와서 기와도 나르고 흙도 나르고 돌도 나르고 그렇게 하는데, 요즘 티벳에서도 보면 땅을 다진다고 여러 사람이 노래하면서 일을 해요. 그 때 양지스님도 노래를 지어서, 울력 할 때 사람들이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노동요라고도 하고, 신라향가라고도 해요.

양지스님이 지은 신라의 문학성이 아주 뛰어난 향가 가운데 한 가지 노래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려드리고 오늘 법문을 끝내려고 합니다.

 

거기에 보면 그 노래는 아주 짧은 노래인데 우리 인생은 현실은 어떤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것들을 잘 표현했습니다.

 

불교사상이 깊이 들어있어요. 먼저 내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다 오다 오다” 첫 줄이 석 자입니다. 오다 오다 오다 과거에도 금생에도 내생에도 온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은 끊임없이 돌고 돌아요. 어디 못 갑니다.

절대 딴 데 못가요. 왜냐? 이 땅 이곳에 진 빚이 많기 때문에 얼키고 설킨 인연이 많기 때문에 다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 번 오다 오다 오다가 나오고 “오다 서럽더라”와 보니까 서러워요. 생활이 어렵고, 인생사 여러 가지 상황이 너무 각박하고, 숨 좀 쉴만하면 또 어려움이 닥치고 어려움이 갔는가 하면 조금 숨 좀 쉴만하고 그렇지요.

 

아이 키워서 젖만 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유치원 보내는 걱정 가니까 또 유치원선생이 요즘 아주 고약한 짓 많이 해서 걱정, 초등학교 보내 놓으니까 또 걱정, 끝까지 걱정입니다. 한 번 제품 만들어 놓으면 AS를 끝까지 해줘야 되요. 그러다가 인생사 볼일 다 보는 거예요. 그래 와 보니까 서럽더라 인생사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니더라는 것이지요.

 

“서럽더라. 우리네여” 그랬어요.

‘나 혼자만 그런가? 나만 팔자가 기구해서 그런가? ’ ‘아니야, 모든 사람이 똑 같다.’

“서럽더라. 우리네여” 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운명을 다 똑 같이 타고났어요.

저 옆집은 아주 팔자 좋은가 보다.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잠깐 그렇게 보일 뿐이고 남에게 그렇게 보이려고 할 뿐이죠.

 

자기 집안의 험한 꼴 슬픈 일 아주 안 좋은 것 부부싸움 한 것을 여러분들 남에게 보입니까? 안 보이잖아요.

보여선 안 되지요. 그러나 전부 속에는 다 썩고 있어요.

속에는 다 썩고 있는데, 겉으로는 멀쩡한 것처럼 위장할 뿐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 “서럽더라. 우리네여” 똑같습니다. 그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된단 말인가?

 

“공덕 닦으러 오다”

공덕 닦고 사는 거예요. 공덕 닦으러 오다. 이것이 넉 줄입니다.

넉 줄이라 해도 그 낱말이 ‘오다/ 서럽더라/ 우리네여/ 공덕/ 닦다’이렇게 다섯 낱말입니다.

 

내가 선창할 테니까 여러분 따라하세요.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오다 서럽더라)

서럽더라 우리네여    (서럽더라 우리네여) 공덕 닦으려 오다     (공덕 닦으려 오다)

 

이상입니다. 오늘 법회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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