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三十七 十地品 第二十六之四 十三, 第七遠行地 1/3 > 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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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염화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三十七 十地品 第二十六之四 十三, 第七遠行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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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20-02-12 11:11 조회1,328회 댓글0건

본문

본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대방광불 화엄경 제 70권을 점
안하겠다. 서문을 펴주시기 바란다.

서문

이 뒤에도 차례차례로
다시 열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니
처음 부처님은 법자재불(法自在佛)이고
둘째 부처님은 무애혜불(無礙慧佛)이며

셋째는 의해혜불(意海慧佛)이요
넷째는 중묘음불(衆妙音佛)이요
다섯째는 자재시불(自在施佛)이요
여섯째는 보현전불(普現前佛)이며

일곱째는 수락신불(隨樂身佛)이요
여덟째는 주승덕불(住勝德佛)이요
아홉째는 본성불(本性佛)이요
열째는 현덕불(賢德佛)이시니라.

수미산 미진수 겁 동안에
그 가운데 출현하신 여러 부처님이
널리 세간의 등불이 되시니
제가 모두 일찍이 공양하였습니다.

부처님 세계 미진수 겁에
그 가운데 출현하신 부처님들을
제가 다 일찍이 공양하고서
이제 이 해탈문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한량없는 겁 동안
행을 닦아 이 도를 얻었습니다.
그대도 만약에 행을 닦으면
오래잖아 또한 마땅히 얻게 될 것입니다.

2017년 10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2020년 1월에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70권을 받았으니
12월이면 81권까지 받아서 마칠 수 있다.
선재동자가 여러 선지식을 친견하는 과정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는 소개를 받게 된다.
지혜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더 커질수록 세상을 보는 안
목, 모든 생명과 모든 사람을 보는 안목이 어떠하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크게 수용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마음은 본래로 큰 것이다. 그 마음을 우리가 100퍼센트
활용할 수 있을 때 그때는 전부가 부처님으로 비치고 전
부 부처님으로 보이고 부처님으로 보이므로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긴다. 그렇게 해석하면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 467페이지 중간(화엄경 제2권 민족사刊)부분을 할
차례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三十七
十地品 第二十六之四
十三, 第七遠行地
 

12, 七地菩薩의 方便示現

佛子야 此菩薩이 得如是三昧智力하야 以大方便으로 雖示
現生死나 而恒住涅槃하며 雖眷屬圍遶나 而常樂遠離하며
雖以願力으로 三界受生이나 而不爲世法所染하며 雖常寂
滅이나 以方便力으로 而還熾然하고 雖然不燒하며 雖隨順
佛智나 而示入聲聞辟支佛地하며 雖得佛境界藏이나 而示
住魔境界하며 雖超魔道나 而現行魔法하며 雖示同外道行
이나 而不捨佛法하며 雖示隨順一切世間이나 而常行一切
出世間法하며 所有一切莊嚴之事가 出過一切天龍夜叉乾闥
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人及非人帝釋梵王四天王等
之所有者나 而不捨離樂法之心이니라

“불자여, 이 보살이 이와 같은 삼매와 지혜의 힘을 얻고
는 큰 방편으로 비록 생사를 나타내지마는 항상 열반에
머무느니라. 비록 권속들이 둘러앉았지마는 항상 멀리 여
의기를 좋아하느니라. 비록 원력으로써 삼계에 태어나지
마는 세상 법에 물들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항상 적멸하
지마는 방편의 힘으로 도리어 치성하여 비록 불사르지마
는 타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부처님의 지혜를 따르지마는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
위에 들어가는 것을 보이느니라.
비록 부처님 경계의 곳집을 얻었지마는 마군의 경계에
머무는 것을 보이느니라.
비록 마군의 도를 초월했지마는 마군의 법을 버젓이 행
하느니라.
비록 외도의 행과 같이 하지마는 부처님의 법을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일부러 모든 세간을 따르지마는 일체 출세간법을
항상 행하느니라.
일체 장엄하는 일이 천신,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
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 사람 아닌 이와 제석, 범
천왕, 사천왕이 가진 것보다 뛰어나지마는 법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
칠지보살(七地菩薩)의 방편시현(方便示現) : 제7지 보살
이 방편으로 보이다
*
7지에서 8지로 넘어가는 과정에 여러 가지 상당히 어려
운 난관이 있다. 그것을 몇 가지 비유를 들어서도 이야기
했다.
천수경에도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같은 말이
있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무위심이나 유위심 그 문
제에 갈등을 한다. 뭘 하든지 간에 유위심으로 하느냐 무
위심으로 하느냐다.
금강경에서도 얼마나 많이 유위와 무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화엄경에서는 유공용(有功用) 무공용(無功用)이
라고 하는데 말의 표현이 조금 달라서 그렇지 같은 뜻으
로 봐도 좋다.
보시를 하든 지계를 하든 인욕을 하든 어떤 육바라밀, 십
바라밀을 닦든 혹은 내가 간단한 수행 생활을 하든 무위
심이 되거나 아니면 무공용이 되면 아무 힘도 들지 않고
생색낼 일도 없다. 힘이 안 드니까 힘이 빠질 일도 없다.
그런데 유공용 혹은 유위로 하면 힘만 들고 뭘 좀 하면
생색을 내게 된다.
우리가 익히 금강경에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 십지품 중에 7지와 8지 관계에서 그런 관계를 죽
이야기 해오고 있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득여시삼매지력(得如是三昧智力)하야; 이와 같은 삼매의
지력을 얻어서 
이대방편(以大方便)으로 : 큰 방편으로써
수시현생사(雖示現生死)나 : 비록 생사를 시현하나.
죽고 태어나고 생사(生死)라고 하는 이 두 글자는 우리의
삶의 모든 상황들을 다 내포하고 있다. 생사하면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오늘 마침 일본분도 오셨는데, 내가 옛날에 일본에 가서 
‘그거 신기하다 한 번 보러가자’라고 일본 사는 스님이
설명하기에 ‘아 훔’이라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아 훔’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마지막 글자
이다.
사천왕문에는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사천왕과 입을 딱 다
물고 있는 사천왕이 있다.
벌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 ‘아’ 하고 소리지르
는 어린 아기의 첫소리를 뜻한다. 그것은 생(生)이다.
‘훔’하는 건 사(死)다. 죽으면 입을 다물지 어떻게 하겠는
가.
생과 사 ‘아 훔’은 우리 인생의 처음과 끝이라는 뜻이다.
‘아 훔’이라는 그 영화는 특별한 내용이 하나도 없이 평
범한 사람의 일생을 그렸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어느 이웃에서도 볼 수 있는 인생살이
를 그려놓았다. 그것은 그대로 생사를 잘 표현했다.
생사는 우리가 너무나 자주 만나는 글자다.
수시현생사(雖示現生死)나 생사를 나타내 보이지만
이항주열반(而恒住涅槃)하며 : 항주 열반한다. 열반은 생
사를 떠난 자리, 분별심 망상심 일체 고난이 다 떠난 자
리다. 생사의 고통까지도 다 떠난 자리가 열반이다. 그래
서 항주 열반한다. 거기에 항상 머물고 있으며. 여기 또
내가 별표를 쳐놓은 단락이 나온다. 아함부 경전 같은 데
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설명이다.
*
수권속위요(雖眷屬圍遶)나 : 비록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
는 삶을 살지만
이상락원리(而常樂遠離)하며 : 항상 마음은 떠나 있는 것
을 즐기며.
항상 더불어 즐겁게 울고 웃으며 살지만 또 한편으로는
늘 권속을 다 떠나 있다.
세상을 살면 이런 인연 저런 인연이 많다. 어울릴 때는
같이 어울려야 된다. 그런다고 그 사람들하고 하나가 되
는 것은 아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면서도 또 같이
어울릴 때는 푹 빠져서 어울리듯이 그렇게 사는 모습이
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데 딱 필요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
수이원력(雖以願力)으로 : 원력으로써
삼계수생(三界受生)이나 ; 삼계에 수생 태어나는 것을 보
이지만. 보살의 지위에 오르면 업으로써 수생하는 것이
아니라 원력수생이 된다. 원력으로써 태어나기는 하지만
이불위세법소염(而不爲世法所染)하며 : 세상법에 물든 바
가 되지 않는다. 원력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업으로 태어나면 전부 세상법에 물드는 바가 된다.
우리는 그 과정에 있어서 이쪽 저쪽 어떤 때는 물들지
않다가 어떨 때는 한 번 깜빡하면 세속에 물들다가 그런
양면을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다.
*
수상적멸(雖常寂滅)이나 ; 비록 항상 적멸하지만
이방편력(以方便力)으로 : 방편력으로써
이환치연(而還熾然)하고 : 도리어 치연하게 산다. 아주
열정적으로 원력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모습을 이야기
한다. 불이 활활 타듯이 치연하고
수연불소(雖然不燒)하며 : 비록 타지만 거기에 타지 아니
하고, 그 속에서 영원히 같이 불타버리지 아니하며 그런
뜻이다.
*
수수순불지(雖隨順佛智)나 : 비록 부처님의 지혜를 수순
하기는 하지만
이시입성문벽지불지(而示入聲聞辟支佛地)하며 :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들어감을 보인다. 부처의 지혜에 수순해
서 어떤 입장에서는 부처님의 지혜를 그대로 증득하고
있지만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들어가 있음을
보인다.
참 어려운 주문이다. 이쯤 되어야 비로소 보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7지 보살이다.
*
수득불경계장(雖得佛境界藏)이나 :비록 부처님 경계의 장
을 얻었으나
이시주마경계(而示住魔境界)하며 : 마의 경계에 머묾을
보인다. 부처님의 경계에 있으면서 마경계에 있음을 보인
다. 마경계에 있음을 보이지만 그 속은 부처님의 경계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마구니 노릇을 하면서도 내비보살
(內備菩薩)이라, 안에는 보살의 정신, 보살의 지혜와 자비
를 또 갖추고 있다.
혹은 보살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또 마구니 노릇
도 때로는 한다. 살다보면 양면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
우리 스님들의 삶을 이야기하더라도 스님이라고 해서 24
시간 늘 스님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으로서
사는 시간도 있고 출세간의 입장에서 출가인으로서의 삶
도 또한 동시에 갖추고 있다.
한 가지를 가지고 따질 일도 아니고 따져서도 안된다. 그
것을 우리가 다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 상황들이
다.
*
수초마도(雖超魔道)나 : 비록 마구니의 도를 초월하고 있
으나
이현행마법(而現行魔法)하며 : 마구니의 법을 나타내서
행한다. 초월하고 있으면서도 마구니의 법을 행하기도 하
고 마구니의 법을 행하면서도 한편 초월해 있기도 한다.
말로는 상당히 모순된 것 같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진리의 법이라는 것은 보통 세속의 말 가지고 다 표현이
안된다. 모순된 말로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
수시동외도행(雖示同外道行)이나 : 비록 외도행과 같음을
보이지만
이불사불법(而不捨佛法)하며 : 그러나 불법을 버리지 아
니한다.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외도행도 하고 또 그대로
칼날같은 불법을 행하기도 한다.
칼날 같은 불법을 행하면서도 또 한편 외도행도 버리지
아니한다. 그런 것이 전부 중도행을 말한다.
전부가 중도행인데 이것을 외줄 타듯이 잘 타야지 어느
한쪽에 치우쳐 버리면 그건 외도에 떨어져 버리는 것이
다.
*
수시수순일체세간(雖示隨順一切世間)이나 : 비록 일체 세
간을 수순하나
이상행일체출세간법(而常行一切出世間法)하며 : 항상 일
체 출세간법을 행한다.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다.
공식은 위에서 봐왔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공식이
다. 마구니라고 했든 외도라고 했든 세간이라고 했든 같
은 입장이다. 출세간이라든지 열반이라고 한다든지 아니
면 마경계를 초월한다거나 부처의 경계에 있다 하는 것
도 뜻이 똑같다. 말의 표현이 다를 뿐이다.
*
소유일체장엄지사(所有一切莊嚴之事)가 : 있는 바 일체
장엄지사가
출과일체천룡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인급
비인제석범왕사천왕등지소유자(出過一切天龍夜叉乾闥婆
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人及非人帝釋梵王四天王等之
所有者)나 ; 일체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
라 마후라가 인 비인 제석과 범왕 사천왕등 소유자를 출
과한다. 일체 장엄지사, 그러한 것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장엄의 일을 다 초월했으나
이불사리낙법지심(而不捨離樂法之心)이니라 : 법을 좋아
하고 즐기는 마음을 사리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일체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의 
삶을 훨씬 뛰어넘는 정도의 삶을 살지만 법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아니한다.  
우리가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야차 용 그런 삶을
살 때가 수시로 있다. 그러면서도 또한 불법 좋아하는 마
음을 버리지 아니하는 자세를 갖는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모순되는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스님도 뭐 이러느냐’ 걸핏하면
그런 소리를 참 많이 한다.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설
명한다고 해서 금방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난감할 때가
많다.
그 자리에서 설명한다고 해서 설명하면 변명밖에 안되니
‘그럴 수도 있다’고 묵묵히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스님이라고 해서 사람이 하는 일을 안 하는 것이 있겠는
가? 다 할 수가 있고 또 할 상황이 되면 해야된다.
그런데 한 면만 보는 신도들이라든지 일반 세속인들은
그 한 면만 보고 비판을 한다든지 꼬집거나 하는 일이
아주 많다.
그러한 것들을 내가 낱낱이 길게 설명을 못해서 그렇지
여러분들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풀어내기로 하면 무궁
무진하게 풀어 낼 수가 있다. 그런 관계다.
본래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매이지 말아야된다고 하
는 의미다.

13, 遠行地의 功果

(1) 調柔果

佛子야 菩薩이 成就如是智慧하야 住遠行地에 以願力故로
得見多佛하나니 所謂見多百佛하며 乃至見多百千億那由他
佛하야 於彼佛所에 以廣大心과 增勝心으로 供養恭敬하고
尊重讚歎하야 衣服飮食과 臥具醫藥과 一切資生을 悉以奉
施하며 亦以供養一切衆僧하야 以此善根으로 廻向阿耨多
羅三藐三菩提하며 復於佛所에 恭敬聽法하고 聞已受持하
야 獲如實三昧智慧光明하야 隨順修行하며 於諸佛所에 護
持正法하야 常爲如來之所讚喜하며 一切二乘의 所有問難
이 無能退屈하며 利益衆生에 法忍淸淨하야 如是經無量百
千億那由他劫토록 所有善根이 轉更增勝하나니 譬如眞金
을 以衆妙寶로 間錯莊嚴하면 轉更增勝하고 倍益光明하야
餘莊嚴具의 所不能及인달하야 菩薩이 住此第七地所有善
根도 亦復如是하야 以方便慧力으로 轉更明淨하야 非是二
乘之所能及이니라 佛子
야 譬如日光을 星月等光이 無能及者라 閻浮提地의 所有
泥潦를 悉能乾竭인달하야 此遠行地菩薩도 亦復如是하야
一切二乘이 無有能及이라 悉能乾竭一切衆生의 諸惑泥潦
니라 此菩薩이 十波羅蜜中에 方便波羅蜜이 遍多하니 餘
非不修로대 但隨力隨分이니라 佛子야 是名略說菩薩摩訶
薩의 第七遠行地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하여 원행지에
머물고는 서원하는 힘으로 많은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느
니라. 이른바 여러 백 부처님을 친견하며, 내지 여러 백
천억 나유타 부처님을 친견하느니라.
저 부처님 계신 데서 광대한 마음과 더욱 수승한 마음으
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의복과 음식
과 이부자리와 의약과 모든 생활용품을 받들어 이바지하
느니라.
또한 모든 스님들에게도 공양하고, 이 선근으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다시 또 부처님 계신 데서 공경하여 법을 듣고 받아 지
니며, 실상과 같은 삼매와 지혜의 광명을 얻고, 수순하여
수행하느니라.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바른 법을 보호하여 지니므로 항
상 여래의 찬탄을 받나니, 모든 이승의 문난(問難)으로는
능히 퇴굴케 하지 못하느니라.
중생에게 이익을 주며 법인(法忍)이 청정하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겁을 지나도 갖고 있는 선근은
점점 더 훌륭하게 되느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진금에다 아름다운 보석으로 사이사이
를 장엄하면 더욱 훌륭하고 광명이 많아져서 다른 장엄
거리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이 이 제7지에 머물러서 가진 선근도 그와 같아서
방편 지혜의 힘으로 더욱 밝고 깨끗하여지나니, 이것은
이승으로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불자여, 비유하면 햇빛은 달이나 별 따위의 빛으로는 미
칠 수 없으며, 남섬부주에 있는 진창들을 모두 말려 버리
는 것과 같이, 이 원행지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
이승으로는 미칠 수 없으며, 모든 중생의 번뇌진창을 모
두 말려 버리느니라.
이 보살이 십바라밀 중에는 방편바라밀이 치우쳐 많으니
라. 다른 것을 닦지 않는 것은 아니지마는 힘을 따르고
분한을 따를 뿐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7
원행지를 간략히 말한 것이니라.”

*
원행지(遠行地)의 공과(功果)
*
십지의 모든 단계에서 늘 표현하듯이 어느 단계에 이르
면 어떤 공과가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행자생활을 다 끝냈다면 그 다음에
사미계만 받아도 누리는 것이 상당하다. 행자와 사미는
누리는 혜택이 천양지차다.
또 그가 누가 됐든 국회의원 출신이든지 무슨 판검사 출
신이든지 대통령 출신이든지 일반 신도로서 절에 왔을
때의 대접과, 그가 만약에 ‘스님 생활이 좋다’고 해서 머
리를 깎고 행자로 들어왔다고 하면 그때부터의 대접은
완전히 다르다.
행자는 누구없이 무조건 행자다.
그렇게 대접이라고 할까 상대해주는 것이 천양지차로 달
라지는 것이고 또 달라질 줄 알아야 된다.
그런데 ‘내가 과거에 뭐였는데, 무슨 판검사였는데’하고
있으면 안 맞는 일이다. 그런 관계들도 이 속에서 다 설
명이 가능하다.
*
조유과(調柔果)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성취여시지혜(成就如是智慧)하야 ; 이와 같은 지혜를 성
취해서
주원행지(住遠行地)에 : 원행지에 머묾에
이원력고(以願力故)로 : 원력을 쓰는 고로 원력을 활용해
서 그 말이다. 
득견다불(得見多佛)하나니 : 많은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
나니 
소위견다백불(所謂見多百佛)하며 : 소위 많은 백이나 되
는 부처님을 친견하며
내지견다백천억나유타불(乃至見多百千億那由他佛)하야:
내지 견다백천억 나유타 부처님 하며 이것도 우리의 안
목이 얼마나 확장되는가, 우리 지혜가 얼마나 확장되느냐
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그와 같이 달라지는 것이다.
부처님이 그만치 있고 없고가 아니다.
내 안목이 어떻게 됐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얼마나 많은 생명체를 부처님으로 볼 줄 아느냐 하는 것
의 차이다.
*
어피불소(於彼佛所)에 : 저 부처님 처소에서
이광대심(以廣大心)과 : 광대심과
증승심(增勝心)으로 : 증승심으로써
공양공경(供養恭敬)하고 : 공양 공경하고
존중찬탄(尊重讚歎)하야 : 존중 찬탄해서
의복음식(衣服飮食)과: 의복과 음식과
와구의약(臥具醫藥)과: 와구와 의약과
일체자생(一切資生)을 : 일체 자생을
실이봉시(悉以奉施)하며 : 다 받들어서 보시하며
*
역이공양일체중승(亦以供養一切衆僧)하야 : 또한 일체 중
승에게 공양해서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이 선근으로써
회향아뇩다라삼먁삼보리(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
부어불소(復於佛所)에 ; 다시 부처님 처소에서
공경청법(恭敬聽法)하고 : 공경하고 법을 듣고
문이수지(聞已受持)하야 : 법문을 듣고 나서는 받아 가져

획여실삼매지혜광명(獲如實三昧智慧光明)하야 : 여실 삼
매의 지혜 광명을 얻어서 
수순수행(隨順修行)하며 : 수순 수행하며
*
어제불소(於諸佛所)에 :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호지정법(護持正法)하야 : 정법을 호지해서
상위여래지소찬희(常爲如來之所讚喜)하며 :항상 여래의
찬탄하고 기뻐하는 바가 되며
일체이승(一切二乘)의 : 일체이승의
소유문난(所有問難)이 : 소유문난에
무능퇴굴(無能退屈)하며 : 물러서는 바가 없으며, 누가
어떻게 세지변총(世智辯聰)하여 자기 아는 것을 가지고
따진다 하더라도 거기에 굴하는 바가 없다. 
*
이익중생(利益衆生)에 : 중생을 이익케 함에
법인청정(法忍淸淨)하야 : 법인이 청정해서
여시경무량백천억나유타겁(如是經無量百千億那由他劫)토
록 : 여시 무량 백천억 나유타 겁을 지날 때까지
소유선근(所有善根)이: 있는 바 선근이
전갱증승(轉更增勝)하나니: 더욱 더욱 불어나고 수승해
지나니, 이것은 정신적인 문제이고 우리 안목의 문제이며
또 마음의 문제다. 마음이 보이는 것이 아니듯이 이것은
전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강원에서 글공부를 한다고 해도 일년 가고 이년
가면서 틀림없이 글을 보는 안목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
다. 그런데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전혀 표시가
없다. 그에 대해서 여기 비유를 잘해 놓았다.
*
비여진금(譬如眞金)을 : 비유하건대 진금을 가지고
이중묘보(以衆妙寶)로 : 여러 가지 아름다운 보배를 가지
고 금에다가
간착장엄(間錯莊嚴)하면 : 사이사이 장엄을 한다. 거기에
다이아몬드를 넣기도 하고 다른 여러 가지 비취 같은 것
도 사이에 끼기도 하고 할 것 같으면.
인도 같은 데 가면 큰 건물 벽에 온갖 보물들을 아주 아
름다운 색깔을 가지고 글씨도 새기고 그림도 넣고 해서
아름답게 꾸미듯이
전갱증승(轉更增勝)하고 : 더욱더욱 많이 수승하게 하고
배익광명(倍益光明)하야 : 광명을 더 빛나게 해서
여장엄구(餘莊嚴具)의: 다른 장엄구로써는
소불능급(所不能及)인달하야 : 능히 미치지 못하듯이
*
보살(菩薩)이: 보살이
주차제칠지소유선근(住此第七地所有善根)도 : 7지에 머무
는 소유선근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이방편혜력(以方便慧力)으로 : 방편의 지혜의 힘이
전갱명정(轉更明淨)하야 : 더욱 더 그 방편의 지혜 힘이
더욱더욱 밝아지고 청정해져서
비시이승지소능급(非是二乘之所能及)이니라 : 이승인 성
문 연각들이 도저히 미칠 수가 없는 바이니라.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일광(譬如日光)을 : 태양빛을
성월등광(星月等光)이 : 성월등광이
무능급자(無能及者)라 : 무능급자라. 아무리 달이 밝고
은하수가 밝다 하더라도 도저히 태양에는 미칠 수 없는
것과 같다.
염부제지(閻浮提地)의 : 염부제에 있는 바
소유니료(所有泥潦)를 :진흙탕을
실능건갈(悉能乾竭)인달하야 : 다 능히 태우듯이
차원행지보살(此遠行地菩薩)도 : 이 원행지의 보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일체이승(一切二乘)이: 일체이승의
무유능급(無有能及)이라 : 능히 미칠 바가 못됨이라.
실능건갈일체중생(悉能乾竭一切衆生)의 : 일체 중생의
제혹니료(諸惑泥潦)니라 : 모든 미혹의 니료, 애착과 미
혹의 진흙탕이다. 표현을 아주 리얼하게 했다.
그 미혹이 우리 삶에 또 마음 씀씀이에 어떤 역할을 하
는가? 마치 저기 저 늪, 진흙탕에 우리가 빠졌다고 했을
때 그 진흙탕이 옷에 묻고 발이 빠져서 나오려고 해야
도저히 나올 수가 없고 차츰차츰 빠져드는 모습으로 표
현해 놨다. 제혹니료라고 하는 말은 그런 뜻이다.
아주 눈에 환하다.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한 번 눈이 어두워서 그런 상황에 빠
져들기 시작하면 그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진흙탕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듯이
*
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십바라밀중(十波羅蜜中)에 : 십바라밀 중에
방편바라밀(方便波羅蜜)이 : 방편바라밀이
편다(遍多)하니 : 치우쳐서 많으니
여비불수(餘非不修)로대 : 다른 바라밀도 닦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단수력수분(但隨力隨分)이니라 : 다만 힘을 따르고 분을
따르느니라.
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명약설보살마하살(是名略說菩薩摩訶薩)의 : 이것의 이
름이 간략히 설명한 보살마하살의
제칠원행지(第七遠行地)니라 : 제7원행지니라.
위 단락의 제목을 조유과라고 했는데 조유라고 하는 것
은 차츰차츰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려서 출가한 사람들은 절에 들어오자마자
아주 나긋나긋하게 중물이 빨리 잘 든다.
그런데 나이 좀 들어서 들어온 사람들은 도대체 중물이
잘 들지가 않는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쌈지가 덜렁덜렁
한다’고 표현한다. 요즘은 그런 경우가 없지만 옛날에는
모든 소지품을 쌈지에 넣어서 늘 달고 다녔다. 출가해서
행자복을 입었는데도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 쌈지를
버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쌈지가 덜렁덜렁한
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서 행자 생활 2-3년쯤이 지나면
그때사 그 쌈지가 눈에 거슬리는지 ‘아 이거 보기 싫다’
고 해서 그 쌈지를 차지 않고 다닌다.
그 외에 합장하는 거라든지 절하는 거라든지 승복입는
거라든지 모든 것에 있어서 늦깍이의 모습이 있다. 나이
들어서 출가한 사람들을 ‘늦깎이’ 라고 한다.
세월이 지나 1년 가고 2년 가고 강원 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강원에서 불교 교리를 배우고 경전을
배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단체생활을 하면서 그런
모든 행위를 익히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한 4-5년 같이 대중생활 큰방 생활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차츰차츰 자연스럽게 물이 젖어서 아주 부드러워
지고 조화로와진다. 조유과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단체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2) 攝報果

菩薩이 住此地에 多作自在天王하야 善爲衆生하야 說證智
法하야 令其證入하며 布施愛語利行同事하나니 如是一切
諸所作業이 皆不離念佛하며 乃至不離念具足一切種과 一
切智智니라 復作是念호대 我當於一切衆生中에 爲首며 爲
勝이며 乃至爲一切智智依止者라하나니 此菩薩이 若發勤
精進하면 於一念頃에 得百千億那由他三昧하며 乃至示現
百千億那由他菩薩로 以爲眷屬이니라

“보살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흔히 자재천왕이 되며,
중생들에게 증득한 지혜의 법[證智法]을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증득하여 들어가게 하며, 보시하고, 좋은 말을 하
고, 이익한 행을 하고, 일을 함께 하느니라.
이와 같이 여러 짓는 업이 모두 부처님을 생각함을 떠나
지 아니하며, 내지 갖가지 지혜와 온갖 지혜의 지혜를 구
족하려는 생각을 떠나지 아니하느니라. 다시 또 생각하기
를 ‘내가 중생들 가운데 머리가 되고, 나은 이가 되고,
내지 온갖 지혜에 의지함이 되리라.’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이 만일 부지런히 정진하면 잠깐 동안에 백천억
나유타 삼매를 얻으며, 내지 백천억 나유타 보살로 권속
을 삼느니라.”

*
섭보과(攝報果) : 과보를 거두는 공과
*
여기 섭보과라고 하는 것은 늘 봐왔듯이 어떤 과보가 있
느냐 하는 것이다.
*
보살(菩薩)이 : 보살이
주차지(住此地)에 : 이 지위에 머물며 원행지에 머물면
다작자재천왕(多作自在天王)하야 ; 흔히 자재천왕이 되어

선위중생(善爲衆生)하야 ; 중생을 위해서
설증지법(說證智法)하야 : 지혜를 증득하는 법을 설해서
영기증입(令其證入)하며 :그들로 하여금 지혜를 증득하는
데 들어가게 하며
보시애어이행동사(布施愛語利行同事)하나니 : 보시와 애
어와 이행과 동사를 실천하게 한다. 사섭법이다.
보시 애어 이행 동사 사섭법은 십바라밀하고 꼭 따라다
닌다.
거기에 또 하나 더 하면 사무량심(四無量心)이고 또 거기
에 유교적인 것을 더한다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그런
것까지도 다 제대로 갖춰서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여시일체제소작업(如是一切諸所作業)이 : 이와 같은 모든
짓는 일이
개불리염불(皆不離念佛)하며 :부처님 생각함을 떠나지 아
니하며
내지불리염구족일체종(乃至不離念具足一切種)과 : 내지
불리염 구족 일체종과, 앞에서는 염법, 염승 이런 것이
다 있었는데 여기는 생략을 해서 내지라고 한다.
일체지지(一切智智)니라 : 일체지지 구족하는 것을 생각
하는 것을 떠나지 아니한다.
부작시념(復作是念)호대 : 또 부작시념하되
아당어일체중생중(我當於一切衆生中)에 : 아당어일체 중
생중에
위수(爲首)며 : 우두머리가 되며 
위승(爲勝)이며: 수승함이 되며
내지위일체지지의지자(乃至爲一切智智依止者)라하나니:
내지 일체 지지의 의지자가 되느니라. 그런 과보 그런 보
를 얻는다.
*
차보살(此菩薩)이 : 이 보살이
약발근정진(若發勤精進)하면 : 만약에 근정진을 발할 것
같으면
어일념경(於一念頃)에 : 한 생각 가운데서
득백천억나유타삼매(得百千億那由他三昧)하며: 백천억 나
유타 삼매를 얻어서
내지시현백천억나유타보살(乃至示現百千億那由他菩薩)로
: 내지 시현 백천억 나유타 보살로
이위권속(以爲眷屬)이니라 : 권속삼음을 나타내 보인다.
백천 삼매를 얻고 백천억 나유타 보살들이 권속이 되어
서 쭉 그를 따른다는 내용이다.

(3) 願智果

若以菩薩殊勝願力으로 自在示現인댄 過於此數하야 乃至
百千億那由他劫에도 不能數知니라

“만일 보살의 수승한 원력으로 자유롭게 나타내면 이
수보다 훨씬 많아서 내지 백천억 나유타 겁에도 세어서
알 수 없느니라.”

*
원지과(願智果): 원력과 지혜의 공과
*
약이보살수승원력(若以菩薩殊勝願力)으로 : 만약에 보살
의 수승한 원력으로써
자재시현(自在示現)인댄 : 자재하게 시현할진댄
과어차수(過於此數)하야 : 이 수를 지나가서
내지백천억나유타겁(乃至百千億那由他劫)에도 : 내지 백
천억 나유타 겁에도
불능수지(不能數知)니라 : 능히 헤아려서 알 수가 없느니
라. 도저히 헤아려서 알 수 없을 정도의 결과를 얻게 된
다는 내용이다.


15, 重頌

(1) 入地의 方便慧

爾時에 金剛藏菩薩이 欲重宣其義하사 而說頌曰

第一義智三昧道를 六地修行心滿足일새
卽時成就方便慧하야 菩薩以此入七地로다
雖明三脫起慈悲하며 雖等如來勤供佛하며
雖觀於空集福德하야 菩薩以此昇七地로다
遠離三界而莊嚴하며 滅除惑火而起焰하며
知法無二勤作業하며 了刹皆空樂嚴土하며
解身不動具諸相하며 達聲性離善開演하며
入於一念事各別하야 智者以此昇七地로다

그때에 금강장보살이 그 뜻을 다시 펴려고 게송으로 설
하였습니다.

첫째가는 지혜와 삼매의 길을
제6지에서 수행하여 마음이 만족하고
즉시에 방편 지혜를 성취하여
보살이 이것으로 제7지에 들어가도다.

삼해탈을 밝혔으나 자비심 내고
여래와 평등해도 부지런히 부처님께 공양하며
텅 비어 공함을 관찰하고도 복덕을 모으니
보살이 이것으로 제7지에 올라가도다.

삼계를 여의고도 삼계를 장엄하며
번뇌의 불을 멸했으나 불꽃을 일으키며
둘이 없는 법을 알고도 업을 지으며
세계가 모두 공하지만 즐겨 국토를 장엄하도다.

법신이 부동함을 아나 상호를 갖추고
소리 성품 떠났지만 연설 잘하며
한 생각에 들었지만 일은 각각 다르며
지혜로운 이는 이것으로 제7지에 올라가도다.
*
중송(重頌)
*
입지(入地)의 방편혜(方便慧)
*
지위에 들어가는 방편이라.
*
이시(爾時)에 : 그때에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 금강장 보살이
욕중선기의(欲重宣其義)하사 : 욕중선기의 하사
이설송왈(而說頌曰) : 이설송왈
*
제일의지삼매도(第一義智三昧道)를 : 제일의 지혜, 제일
가는 어떤 진리의 깨달음 거기에 대한 지혜와 삼매의 도

육지수행심만족(六地修行心滿足)일새 : 6지에서 수행해서
마음이 만족했을 새
즉시성취방편혜(卽時成就方便慧)하야 : 그때 방편혜를 성
취해서
보살이차입칠지(菩薩以此入七地)로다 : 보살이 이것으로
써 7지에 들어갔음이로다. 정리하는 것이다.
*
수명삼탈기자비(雖明三脫起慈悲)하며: 삼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공과 무상과 무원이다.
비록 삼탈, 삼해탈을 밝히고 자비를 일으키며
수등여래근공불(雖等如來勤供佛)하며 : 비록 여래와 동등
하다 하더라도 부지런히 부처님께 공양올린다.
아까 보인 중도의 가르침이 여기 게송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수관어공집복덕(雖觀於空集福德)하야 : 비록 모든 것이
공하다고 하는 것을 관하지만 복덕을 모은다. 복과 덕을
모은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은 초기불교 같은 데서의 약점이
다. 전부 공하다고 하는 공(空) 일변도로만 나가고 복덕
을 모아야 되고, 복덕을 닦아야 되고 지혜를 닦아야 된다
는 것 등은 그만 좀 뒷전이다. 그런 것을 크게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이 초기불교의 제일 약점인데 여기는 수관어
공집복덕하야 비록 공을 관하지만 복덕을 모아서
보살이차승칠지(菩薩以此昇七地)로다 : 보살이 이것으로
써 7지에 올라간다. 물론 공 무상 무원 같은 근본불교
또는 상좌부 불교에서 갖춰야 할 그런 것을 다 갖춘다.
그러면서도 자비를 일으킨다.
소승불교에서는 그저 내 문제 해결일 뿐이지 자비를 일
으킨다는 말도 별로 없다.
우리 북방불교에는 아함부경전이 일찍이 소개되어서 어
지간히 알만치 다 알고 있지만, 근래에 특히 남방불교 상
좌부불교 또는 초기불교 동호회도 있고 굉장하다.
초기불교가 요즘 상당히 성행을 하는데 그 불교의 좋은
점도 상당히 있지만, 내가 아무리 천 번 만 번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대승불교는 거기에서 훨씬 많이 발전한, 거
기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보완하고 발전해서 도저히 상
대가 되지 않는 불교임에 틀림이 없다.
대승불교는 그렇다.
이런 데서도 짚고 넘어가지만 여기는 화엄경이고 또 십
지품이니까 공과 무상과 무원 이것은 초기 불교의 트레
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런 것을 다 밝혀
서 알고 거기에 환히 통달했지만 거기에다가 또 자비를
일으킬 줄 알아야 된다.
자비를 못 일으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중생제도라든지 보살행이라든지 이런 말
을 거의 안한다. 요즘 워낙 인터넷 매체가 잘 되어서 그
쪽 공부를 전공한 사람들의 강의를 하루에 열시간이고
스무시간이고 들으려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공부할
수가 있다. 그것을 정통으로 공부해온 사람들의 강의를
눈앞에 모시고 듣듯이 듣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열심히 공부를 한다.
거기도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약간 봉사활동 보살행
이런 말을 하는데 얼핏 얼핏 지나가면서 할 뿐이고 여기
대승불교에서처럼 설사 실천은 못할지라도 그저 자나깨
나 보살행, 보살행, 자비를 일으킨다는 말은 거의 없다.
그 점이 참 안타까운 점이다.
수등여래라도 근공불이라.
비록 자기가 여래의 공과 무상과 무원을 터득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부지런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알고 공양올리는
것이다.
그 다음에 수관어공집복덕이라. 비록 공에 환하지만 늘
무아니 공이니 하는 것이 항상 마음 저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 그것이 재산이라 하더라도 복덕을 모아야 된다.
복덕을 열심히 모은다는 이런 이야기가 소승불교에는 또
없는 것이다.
보살이 이것으로써 제 7지에 올라간다.
*
원리삼계이장엄(遠離三界而莊嚴)하며 : 이것도 역시 내가
별을 세 개씩 쳐놓았다. 원리삼계이장엄이라. 삼계를 멀
리 떠나는 것 이것은 소승불교에서 꿈에도 잊지 못하는
목표다. 원리삼계 어떻게 하더라도 삼계를 멀리 떠나버리
고 더이상 이 사바세계에 오지 않고 인간세계에 오지 않
고 완전히 이 세상을 떠나버리는 것 수행해서 떠나든지
아니면 죽어서 떠나든지 그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소승경전은 경전 자체가 전부 비구들이 공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경전에 일일이 ‘비구야 비구
야’ 이렇게 나온다.
그런데 요즘 보면 앉아 있는 사람들은 비구는 한 사람도
없고 전부 일반 신도만 앉혀 놓고 ‘비구들이여 비구야’
하는 법회가 행해진다. 참 정말 이상하다. 신도들을 앉혀
놓고 ‘비구야’ 하는 것은 맞지도 않다.
그리고 거기는 오로지 공, 무상, 무원만 특히 사정심관
오정심관 이런 것을 닦는 이야기만 하니까 가족하고 같
이 살아야 되는 사람들에게 맞지 않다.
모든 사람들을 전부 시체로 관하고 백골로 관하고 무슨
뼈 무더기로 관하고 이런 것이 소승경전에는 부지기수로
나오니까 그 이야기를 안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구들을 앉혀 놓고는 그런 이야기가 가능하다.
경전에는 ’선남자 선여인이여’ 하지 않고 ‘비구야 비구여’
라고 부른다.
여기도 보면 삼계를 원리하는 것이 소승들의 목표다.
그러나 삼계를 멀리하지만 삼계를 장엄한다. 삼계를 멀리
하면서도 삼계를 장엄하는 것이다.
멸제혹화이기염(滅除惑火而起焰)하며 : 미혹의 불을 멸제
한다. 꺼서 없애지만 그러나 염, 이 염(焰)자는 지혜의 불
꽃이다. 지혜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일으킨다는 말이
다.
미혹의 불을 한쪽으로는 꺼뜨리면서 그 대신에 지혜의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빛나게 한다.
지법무이근작업(知法無二勤作業)하며 : 법이 둘이 없음을
알지만 그러나 부지런히 업을 지으며, 상반되는 내용이
다. 
요찰개공낙엄토(了刹皆空樂嚴土)하며 : 세계가 다 공한
줄을 알지만 또한 그 세계를 즐겁게 엄토한다. 국토를 장
엄한다.
중도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인데
어느 한 곳에 치우치면 일상생활이 그만 어긋나고 안된
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 중
도를 행하면서 산다.
예를 들어서 부처님께 음식 공양을 올릴 때 얼마나 엄하
게 하는가. 사과 같은 것을 올리려고 닦다가도 굴러떨어
지면 아주 송구스러워 하면서 도저히 그것은 올리지를
않고 정말 깨끗한 것만 올린다든지 하는데 그러면서도
내려서 먹기는 또 잘 먹는다.
부처님한테 그렇게 올렸으면 어떻게 우리가 감히 먹겠는
가. 그것이 벌써 우리가 중도를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다. 먹을 때는 먹더라도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올리
는 것이다. 그런 것이 중도다.
세계가 공한 줄을 알지만 그러나 또 즐겁게 국토를 장엄
한다.
*
해신부동구제상(解身不動具諸相)하며 : 몸이 동하지 아니
함을 아나 법신은 부동이다. 법신은 부동한 줄을 알지만
모든 상을 잘 갖추고, 32상 80종호를 잘 갖추고 
달성성리선개연(達聲性離善開演)하며: 소리의 성품이 다
떠났다고 하는 사실을 요달했으나 그러나 잘 열어서 설
법하고 연설한다. 선개연이라. 
공하다고 하는 것을 이해시키는데 소리가 제일 쉬운 방
편이 된다. 소리는 나가지만 금방 없어진다. 공을 소리가
공하다고 하는 것을 통해 이해하기가 아주 쉽다. 그러면
서 부처님이나 부처님 제자들이나 지금까지 오늘 이 순
간까지도 끊임없이 떠든다. 그것이 선개연이다.
소리의 성품이 모든 것을 다 떠났고 공하다고 하는 사실
을 알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또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함을 알면서도 떠들 때는 떠들어야 된다.
떠들면서 또 소리의 성품이 모든 것을 다 떠났다고 하는
사실, 공하다고 하는 사실을 또 알고 떠들어야 된다.
그런 이치들이다. 이것을 자세히 우리가 곱씹어 보면 아
주 재미있는 대목이다.
입어일념사각별(入於一念事各別)하야 : 일념에 들어가나
각각 차별해서
지자이차승칠지(智者以此昇七地)로다 ; 지혜로운 사람이
이것으로써 7지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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