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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25-05-19 10:31 댓글0건본문
Sydney의 도반들
기후 스님 (호주 정법사 회주)
『Sydney의 도반들』
도서출판 맑은소리맑은나라 / 기후 스님
아타我他의 경계가 사라진 팔순 납자衲子
선심禪心으로 돌아본 삶의 지난 여정旅程
호주 시드니 정법사 회주 기후 스님의 신작 에세이집 『Sydney의 도반들』이 출간되었다.
2009년 1월, 독자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구도소설 『꿈속의 인연들』이후 16년 만의 신작(新作)이다.
통상 도반(道伴)은 길을 가다 만난 이를 말하지만, 책에 나오는 도반은 사람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사람, 사물, 심지어 동물도 포함하며, 한평생 수행길에 함께 했던 모든 존재들, 즉 불도(佛道)를 함께 걸었던 모든 길동무를 뜻한다.
그래서 책에는 어릴 적 속가에서의 추억들이 담겨 있고, 출가 후 치열했던 수행의 나날들이 새겨져 있다.
승속(僧俗)과 시공(時空)을 넘나드는 여러 인연담(因緣談)들이 한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렇듯 세납(歲納) 여든을 훌쩍 넘긴 노승(老僧)의 마음엔 삶의 고해(苦海)를 함께 항해했던 도반들과의 시간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살아 있다.
도반들 중엔 우리의 옛 것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골동품이라 하기엔 좀 부족하고, 고물(古物)이라 부르기엔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오래 전 일상생활용품들...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또 다른 서문에서, 고리타분한 취향으로 보일 수도 있는,
과거 한때 일상생활용품이었던 골동품(!)에 대한 애착에 관해
"억겁의 시공 속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칙을 안고 사는 우리네들,
그 사소한 것들을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리요마는
잠시 머무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것에 내 영혼을 담아두고 싶은
한 가닥의 중생심이 발작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겸연쩍게 밝히고 있다.
골동품 도반들, 고물 도반들에 대한 애틋한 정이 가득하니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이어진 글을 보면, "멍석, 풍구대(알곡을 걸러 내는 것), 베틀 등등 여러 물품들을 시드니까지 싣고 오게 되었다.
아쉽게도 위의 3가지 큰 물품들은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모두 썩어버렸고, 작은 것들만 여러 가지 남아 있다.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망상의 힘에 말려들어 이렇게 책 속에 남겨두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알고 보면, 그 많은 고물(古物)들을 바리바리 싸서 컨테이너에 실어 배에 태워 태평양을 건너 시드니까지 모시고 온
스님의 속사정이 애틋하다. 오래되어 낡고, 이젠 그 쓸모를 찾기 어려운 옛 물건들을 대할 때면,
자신의 생명과 조상님의 얼이 함께 스며있음을 느끼며, 오줌싸개였던 어린 시절의 동심(童心)이 아른거리고,
함께 뛰놀던 옛 고향 친구들이 생각나며, 언제나 마음에 머물고 계신 어머니와 할머니,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한다.
그 결과, 어릴 적 속가에서의 추억들과 우리의 옛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서툴렀던 초기 출가수행시절의 에피소드를 추려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독자들과 나눔으로써
함께 했던 여러 도반들에 대한 애정을 한 개인의 집착이 아닌 나눔의 보시행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곁에 머물도록 하고 팠던 지극한 중생심(衆生心) 발로(發露)의 회향(廻向)이라 할 수 있다.
잊혀진 우리의 옛 것들처럼 우리네 지난 삶 또한 희미한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하지만 그것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경험이며, 고된 삶을 버티게 해준 따스한 위안이다.
실린 글 모두 스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찬찬히 읽다 보면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지난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기에 책에 나오는 도반들은 스님만의 도반이 아니다.
잊고 있었던 친구(親舊)와도 같은 우리 모두의 도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책에는 언급이 전혀 없는, 아주 특별한 스님의 도반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위암(胃癌)이라는 도반이다. 호주에서 15년 째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하던 때였다.
하지만 스님은 덤덤히 그를 받아들였고, 일신(一身)을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첫 구절(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易生 염신불구무병 신무병즉탐욕역생.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의 금언(金言)처럼 별다른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경북 봉화의 어느 토굴에서 지내며, 그 흔한 핸드폰도 없이 7년을 홀로 기도정진하여
마침내 위암 도반을 조용히 돌려보냈다.
그런 후 처음 발원했던 대로 해외 포교를 위해 훌훌 다 털어버리고 다시 호주로 떠나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책에는 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 살 때 앓은 천연두로 생긴 얼굴의 흉터 때문에
교육자의 꿈이 좌절되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괴로워했던 출가 수행자의 일생이 압축되어 있다.
허나 내용은 심각하지 않고, 분위기도 무겁지 않다. 목숨을 건 진지한 구도(求道) 속에도 따뜻한 해학(諧謔)이 넘친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웃기면서 눈물 나고 재밌는데 짠하다.
책의 후반부엔 부록처럼 육필 원고가 그대로 스캔 되어 실려 있어
스님의 멋스런 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다.
암호문(?)을 해독하듯 꼼꼼히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목차 및 본문
난 中 2때까지 오줌을 쌌으니 꼬마 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긴긴 겨울밤, 잠들면 배고픈 줄 모른다고
멀건 국수물을 많이 먹다가 보니 그 횟수가
더욱더 잦아졌다. 방(房)이 추워서 핫바지를
입은 채로 자다가 보니 그 뒷일이 더 어설프다.
이른 아침 눈을 떠서 또 실례 한줄 알게 되면 슬그머니
부엌에 나가는 어머니 뒤를 따라 나선다.
어머니의 엷은 미소가 내 눈과 마주친다. 또, 또, 또….
부엌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불을 지피면 아랫도리
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와서 그곳이야 말로 천하
제일 명당(明堂)이다. 일요일에 그렇게 되면 키를
뒤집어쓰고 골목길을 나선다. 그것도 외아들 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야 더 큰 효과가 있단다.
그 집을 찾아가면 작은 접시에 소금을 담아준다.
뒤돌아 올 때 부지깽이로 키 등짝을 크게 내리치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놀라게 해준다. 그날은 하루 종일 그
소금이 반찬이다. 옛과 지금, 와룡산과 블루 마운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오줌싸개였던 지금의 자신도
내려다본다. 옅은 미소가 구름에 실려 내 고향을
찾아 나선다. 아, 아, 옛날이여!!!….
저자
1943년 안동에서 출생.
1965년 범어사로 출가.
1969년 통도사에서 사미계 수지.
통도사 승가대학 졸업. 통도사,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강사 역임.
용화사, 봉암사, 통도사 등 제방 선원에서 여러 안거 성만.
경주 기림사 북암에서 6년간 묵언 정진.
1991년 호주 포교 시작.
1993년 호주 시드니 정법사 창건.
2006년 위암3기 진단으로 귀국.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비가 조금만 내려도 길이 끊기는
경북 봉화에 있는 토굴에서 핸드폰도 없이 7년을 기도하며 병을 이겨냄.
2012년 다시 호주로 돌아감.
현재 호주 시드니 정법사 회주로서 해외 포교에 주력.
저서로는 구도소설『꿈속의 인연들』(2009년), 수필집『네가 던진 돌은 네가 꺼내라』(2011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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