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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25-01-10 15:46 댓글0건본문
서산대사 禪詩
서산대사 / 보명스님 역
서산대사 휴정, 그를 지칭하는 이름자는 다양하다.
법명은 휴정이며 호는 청허, 서산이었고 별호는 백화도인 혹은 서산대사, 풍악산인, 두류산인, 묘향산인 등 많고도 많았다.
그러나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서산대사라고 불리었다고 전해진다.
서산대사는 조선 중종 15년이던 경진년에 태어났다.
자라면서 남다른 데가 있어 돌을 세워 부처라 하였으며 모래를 쌓아 탑이라 하며 놀기를 좋아하였다.
그랬으니 부친의 꿈과 어릴 적 놀이 등을 보면 이미 불연이 웬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 그의 시세계, 서산대사의 詩作 등을 들여다보면 선가의 대가다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경주 산내 보광사의 보명스님은 동학사 학인시절부터 선가귀감을 읊었다.
선배스님들의 독송에 맞추어 빨리 읽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귀에 익고 입에 익으니 선배스님들의 독송에 속도가 맞춰지더라고.
더욱이 BBS불교TV에서 「서산대사 禪詩」를 강의하는 기회와 함께 오래 전, 석사 논문에 정리를 더하여
금번 『서산대사 禪詩』 역해본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보명스님은 선시를 접하며 법희선열락의 깨달음을 읊기도 하고 대자연의 오묘한 진리를 일체를 대변하는 선오시(禪悟詩)로 읊기도 하였다.
또한 선심에 투영된 자연과 주객일여를 이루며 삼라만상을 유유자적하게 읊은 서경시(敍景詩)와
제자와 벗들과의 정담을 시로써 표현한 수창시(酬唱詩)와 임진왜란의 전쟁을 겪으며 느낀 전란시(戰亂詩),
분류한 시 외에도 때에 따라 읊은 감흥시(感興詩)를 따로 분류하여 엮은 것은 보명스님만의 선가귀감을 보는 시선이 충분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편, 청간정(淸澗亭)의 한 구절에서는 이런 글귀를 발견하게 된다.
‘산중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시냇물 소리,
새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맑은 시내는 소리 있는 옥인데,
소리마다 나그네의 마음을 씻누나.’ 라고.
더욱이 스님이 이 구절에서 남다른 풀이를 보태어 보는 이로 하여금 친절한 문장이라는 찬사가 답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문을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만난다.
서산대사는 말한다. “가을 하늘 저무는 줄을 몰랐는데 달은 벌써 단풍나무에 비친다고,
푸르던 저 창창함은 어디로 사라져 벌써 단풍나무 설법도 최고의 법문이 된다.”
서산대사는 노후, 산중으로 돌아와 선심, 시심의 마음으로 선을 하고 시를 쓰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글을 남겼다.
보명스님은 책의 출판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들었었지요. 이제 눈에 보일 듯 말 듯 해제의 시간이 오는 것 같습니다.
서산대사 선시를 접하게 되면, 금강(金剛)더욱 단단해지고,
화엄(華嚴)이 더욱 빛나는 순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봄이 오듯이 말입니다.”
이번 『서산대사 선시』의 표지에 청자빛 달항아리가 눈에 띄는데
이는 보명스님께서 번역한 선시를 손수 워딩하며 스님을 시봉한 단청작가 이경희 선생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내지 삽화에는 불교전문 아티스트인 백화거사의 그림이 시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더욱 빛나는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觀虛 普明(관허 보명)
울진 불영사에 출가
부산 동래 관음포교원 개원, 10년 간 도심포교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에 보광사 창건
농사와 포교를 하며 근행정진 중
인도 보드가야에『 파담파니 관세음학교』설립
인도 어린이들에게 포교와 전법의 원을 실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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