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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25-11-11 10:46 댓글0건본문
바람이 홀로 생각하는가
도진 스님
들어가면서
내게 주어진 인생에서의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가끔은 일탈을 꿈꾸기도 해보고,
또 어느때는 그저 아무도 모를 나만의 공간에 숨어들어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때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합니다.
인생의 어느 일정 기간 동안 내게 주어진 책임을 내려두고 다시 나만의 시간을 즐기려 합니다.
몇일이 될지, 몇달이 될지 혹은 몇년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마주한 오늘을 즐겁게 맞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가 걸은 길이 서산대사의 답설가처럼 혹여 어지럽지나 않았는지 뒤돌아보고 그 흔적들을 남기려 합니다.
제가 살면서 끝없이 꿈꾸던 대자유는 도대체 무엇인가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으며 살아보려 합니다.
종교가 세상을 어지럽히며 부귀영화를 탐내며 영원한 그들만의 행복을 꿈꾸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8년 간의 작은 암자 주지 소임을 내려놓고 다시 홀가분하게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얼마 간의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자유를 만끽해보려 합니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어지러웠다면
제 발자국을 보고 뒤따라 걸어올 이는 그 어지러움을 건너뛰어 바르게 갈 수 있도록 가끔 깃발 하나씩 세우는 마음으로
흔적 하나라도 남겨보려 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삶을 걷는 당신이 되기를 빕니다.
행복한 한걸음 한걸음이 되시길.
도진 합장
목차 및 본문
8년간의 작은 암자 주지 소임을 마친 스님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뒤따라 걸어올 후학들을 위해
그들이 조금이나마 수월한 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불제자 수행자로서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겪고 느꼈던 것들에 관한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할 수밖에 없는 절집 속사정 이야기들,
조금만 깨어 살펴보면 우리 실생활에 곳곳에 그대로 녹아있는 부처님의 가르침들,
옛날 옛적 선사들의 기막힌 에피소드들,
그리고 스님의 출가 전후 개인사까지 꼼꼼히 써내려간 내용들이 다채롭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스님은 처음부터 이 글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마음으로 썼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를 의식한 나머지 뭔가 감추거나 숨기거나 꾸미거나 애써 드러내려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바를 마음 가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덤덤히 써내려간,
자신과 나눈 마음의 소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책의 전체적인 짜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순서대로 꿰고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와 이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결과들은
일상의 단상斷想을 모아 놓은 일반 에세이집에서의 훈훈한 느낌을 넘어 숙연한 무게감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수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인 것이다.
아래는 책에 나오는 부설거사의 팔죽시 전문이다.
부설거사 팔죽시浮雪居士八竹詩
차죽피죽화거죽此竹彼竹化去竹 풍타지죽랑타죽風打之竹浪打竹
죽죽반반생차죽粥粥飯飯生此竹 시시비비간피죽是是非非看彼竹
빈객접대가세죽貧客接待家勢竹 시정매매세월죽市政買賣歲月竹
만사불여오심죽萬事不如吾心竹 연연연세과연죽然然然世過然竹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되어 가는대로
바람 불면 부는대로 물결치면 치는대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사는 형편대로
옳으면 옳은대로 그르면 그른대로 보이는 그대로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세상 물건 사는대로 파는대로 그때 시세대로
세상만사 내 맘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그러면 그런대로 그렇다면 그런대로 세상 따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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